금호미술관 작년 작고 한국화가 한정수씨 5회 개인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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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년전 한창 나이에 작고한 한 화가의 유작전을 지인 (知人) 들이 마련해줘 미술계에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다.

금호미술관 (02 - 720 - 5114)에서 15일까지 열리는 한정수씨 유작전이 그것. 전시 팸플릿에 '유작전' 이나 '추모전' 이라는 말 대신 다만 '제 5회 한정수 개인전' 이라고 적혀 있는 데서 죽음을 둘러싼 섣부른 미화보다는 한 유망한 작가의 작품 세계가 정지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이 자리를 만들게 된 이유였음을 짐작할 수있다.

서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한씨는 나이 마흔이 되던 지난해 위암으로 숨졌다. 생전 그는 묵조회 (墨潮會) 라는 모임 활동에 열성을 보였는데, 김호득.김병종.권기윤.이종목씨 등 현재 동양화단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40대 작가들이 이곳 동인들이다.

그런 인연으로 김호득씨가 추모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스승이었던 이종상 서울대 교수를 비롯, 묵조회 동인을 중심으로 한 서울대 동문들이 추모 사업에 참여했다.

96년 그의 마지막 개인전이 열렸던 금호 미술관에서 다시 자리를 내주었고, 도서출판 학고재가 유작화집을 묶어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40여점은 돌과 씨앗.달팽이.꽃나무 등 단순하고도 범상한 소재들을 주로 그린 것이다. 형식적 실험이 눈에 띄는데, 동양화의 전통적 재료인 지필묵에 목탄을 접목시켰다.

지두화 (指頭畵) 라고 불리는 이러한 그림은 목탄의 특성상 붓 대신 손으로 직접 종이와 접촉하게 된다. 또 종이 뒷면에서 색을 칠해 앞면에 은은하게 색깔이 배어들게 하는 배채법 (背彩法) 을 사용한 것도 특징으로 꼽힌다.

미술평론가 박영택씨는 이 두 가지 방법은 형태와 채색 면에서의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움, 즉 무위 (無爲) 를 이루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가 담긴 것이라고 평한다.

그는 생전 '현대성' 을 담지 못하는 동양화의 한계를 고민하면서 동시에 현대적 조형 언어로 풀어내고자 하는 시도의 또다른 양식화에 대해서도 고민했다고 전해진다.

목탄을 쓰는 등의 방법적 모색 역시 치열한 문제의식의 발로였을 것이고, 이는 '화훼연습' 연작을 비롯해 그가 남긴 1백여점의 작품들에서 믿음직스러운 가능성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추모위원회의 아쉬움 섞인 평가다.

어쨌든 사후에라도 벗들의 정성으로 작품 세계가 정리되는 자리가 열렸으니 한정수씨는 '행복한 작가' 임에는 틀림없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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