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된 노숙자 동지…성공회등 주선 화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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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결혼식은 꿈도 못 꿨는데…. "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서울역과 청량리역 일대를 전전하며 노숙을 했던 박성수 (朴成洙.43) 씨는 요즘 '제2의 인생' 을 다짐하고 있다.

실직 후 절망과 좌절 속에서 나날을 보내던 朴씨가 내일이면 어여쁜 신부를 맞아들이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가 될 사람은 다름 아닌 '노숙자 동지' 김영희 (金英姬.29) 씨. 두사람은 노숙자 다시서기 지원센터 (777 - 5217) 와 성공회 살림터 (3474 - 0282) 의 도움으로 28일 오후 2시 을지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비슷한 처지의 '노숙자 커플' 세쌍과 함께 합동결혼식을 올린다.

주례는 서울시노숙자대책협의회 이재정 (李在禎.성공회대 총장) 위원장이 맡는다.

이들의 만남은 외환위기 '덕분' 에 이뤄졌다고 한다.

朴씨는 지난해 2월 배달원으로 일하던 중국집을 나와 노숙을 시작했고 비슷한 시기에 음식점을 그만두고 노숙자가 된 金씨를 알게됐다.

8개월 동안 콘크리트 바닥위에서 신문지를 덮고 잠을 청하며 사랑을 키웠던 두사람은 지난해 10월 가족단위 노숙자 쉼터인 성공회 살림터에 입소하면서 재활의지를 차츰 회복했다.

朴씨는 올들어 하루도 거르지않고 재활용품 분류작업 등 공공근로에 나가 이제는 매월 30만원의 정기적금을 붓고 있다.

"하루 빨리 자립해서 주위로부터 받은 도움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 1박2일간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성공회 살림터에 한평짜리 신방을 차리는 이들은 내년초쯤 적금을 타서 노점상을 차린다는 작은 꿈을 키우고 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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