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서울시립극단 '벚꽃동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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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러시아 사실주의의 거장이자 완성자로 평가받는 안톤 체홉 (1860~1904) .그의 작품은 고전으로 남아 이 시대 연극인들에게까지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있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시대를 달리하는만큼의 지루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극단 백수광부의 '굿모닝 체홉' 과 체홉페스티벌 등 지난해 연극계를 강타한 체홉 열기에 이어 서울시립극단이 지난 9일 무대에 올린 체홉의 유작 '벚꽃동산' 은 이런 고전의 양면 가운데 후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작품이다.

모스크바 쉬옙킨 대학에서 러시아 사실주의를 공부한 연출가 전훈씨는 체홉을 전공한 함영준씨와 함께 19세기 체홉을 현재의 일상어로 새롭게 번역하는 것으로 이번 작업을 시작했다.

'고전은 따분하다' 는 선입견을 깨고 '체홉 사실주의의 재미 재발견' 을 위한 장치이다.

하지만 벚꽃동산의 영주인 라넵스카야 부인과 오빠 가예프 역을 맡은 최형인과 정동환의 연기는 체홉을 '재미있는 고전' 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체홉은 러시아 혁명을 전후한 불안한 시대 속에 놓인 인간들을 통해 일상의 삶에 대한 보편적 진리를 말했다.

'벚꽃동산' 은 러시아 혁명기 전후의 급격한 사회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귀족계급과 발빠른 변신을 하는 주변인물을 벚꽃동산이라는 상징을 매개로 담아내고 있다.

이같은 내용은 자칫 잘못하면 현대인의 시각에서 볼 때 구태의연할 수 있다. 2시간이 넘는 공연시간도 관객의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이에 대해 전훈씨는 "헌것은 버리고 신기한 것만 찾는 관객들이라면 지루할 수도 있다" 며 "밀도있는 체홉 해석으로 체홉에 한발 더 다가간 성공작으로 본다" 고 자평했다.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통해 인간을 들여다보는 소극 (笑劇) 적 형태를 띠고 있는 이 작품은 줄거리보다는 현실감없이 자기 밖에 모르고 남의 말에는 무관심한 인물들의 심리적 흐름을 따라 감상하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29일까지 오후 7시30분 (토요일 3시 추가) , 일요일 3시 세종문화회관 소강당. 02 - 399 - 1647.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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