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공원묘지 상당수 유족 두번 울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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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웬만한 비 한번 퍼부으면 그냥 무너져 내릴 것 같아요. "

경기도양평군서종면 M공원묘지.

지난해 8월 폭우로 흉물스럽게 깎여나간 황톳빛 산허리에 위태롭게 서있는 위령탑을 보며 한식을 앞두고 찾아온 성묘객들은 불안하다.

이 탑은 지난 여름 1백80여기의 무덤이 유실된 후 유족들이 시신수습과 묘소복구를 포기하는 대가의 하나로 공원묘지측이 세운 것이다.

이 묘원은 경사도가 30도를 넘는 가파른 위치도 문제지만 폭우 피해 후 눈가림으로라도 해놓았을 법한 주변정리조차 전혀 안돼 있다.

망자 (亡者)에게도 산 자에게도 안식을 주지 못하는 '영혼의 휴식처' .이것이 우리 공원묘지의 현실이다.

성묘철을 맞아 본지 기획취재팀이 중부지역 일대 사설 공원묘지들을 점검한 결과 분양가 바가지.수해복구 부실.허가지역밖 불법분양.경영진 기금유용 등 일부 묘지의 관리부실과 불법.탈법이 심각했다.

묘지의 집단화를 통해 국토잠식을 막고 시민들의 쉼터를 마련할 목적으로 전국 1백13곳 (약 1천50만평)에 조성된 사설공원묘지 중 상당수가 당초 취지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 광주군 S공원묘지. 묘지 사용료 (분양가)가 평당 16만5천원으로 고시됐으나 실제로는 60만원이 넘고, 의무화된 비석 등 석물비를 포함하면 평당 1백만원을 웃돌았다.

지자체 등 감독기관의 관리가 허술한 틈을 타 장례와 관련해 돈 따지기를 꺼리는 유족들의 심정을 악용한 사례다.

지난해 여름 수해로 유실된 묘지와 시신도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복구와 수습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

경기도양주군장흥면 W공원묘지. 수해 때 전체 7천4백여기의 분묘 가운데 1천4백여기가 유실되거나 파손된 계곡에는 아직 토사와 무너져 내린 축대.암석들이 뒤섞여 있다.

이곳에서 만난 성묘객 조찬호 (44) 씨는 "아버님 분묘가 물에 휩쓸린 뒤 대책없는 관리사무소와 벌여온 보상 줄다리기에 지쳐버렸다" 며 "일단 무너진 묘지를 그대로 둔 채 내 돈을 들여 묘역내 딴 곳으로 이장했다" 고 말했다.

조씨는 "어쨌든 이번 한식에는 성묘가 가능해 돌아가신 아버님께 덜 죄송스럽다" 고 덧붙였다.

기획취재팀 하지윤.왕희수.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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