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정부 1년 기념식 한바탕 소란]내각제 갈등 폭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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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민회의.자민련의 공동정권 출범 돌잔치가 엉망으로 끝났다.

험악한 상태도 연출됐다.

25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민의 정부 출범 1주년 기념식' 에서 초청교수 특강 중 '내각제' 대목이 도화선이 돼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것. 국민회의측이 초청한 고려대 김호진 (金浩鎭.노동대학원장) 교수는 "내각제를 하려면 양당 갈등없이 해야 한다.

여론은 미묘하다.

양당 갈등으로 경제회생에 실패하면 국민은 하루아침에 등을 돌릴 것" 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즉각 자민련 좌석 쪽에서 "대국민 공약을 그렇게 떠들면 되느냐" 는 고함이 나왔다.

자민련 당직자 10여명도 "연설 그만해" "내려와" 라고 소리쳤고, 이에 "조용히 하라" 는 국민회의측 맞고함이 터졌다.

金교수는 이를 묵살한 채 강연을 계속했으나 5분 뒤 "현 정권의 다른 업적은 21세기형 한국을 준비할 제2건국운동" 이라고 한 대목이 다시 소동을 불렀다.

윤창오 (尹昌五) 자민련 정책위 부의장이 앉은 자리에서 "다 실패했다고 그런다" 고 고함을 쳤고, 이에 국민회의 당직자 4~5명이 뛰쳐나와 尹부의장의 입을 틀어막는가 하면 앞뒤에서 넥타이를 잡아끌고, 뒷덜미를 낚아채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자민련 당직자 2명이 金교수를 끌어내리려고 연단으로 향하다 건장한 국민회의측 인사들의 제지를 받았다.

"자민련 당원은 모두 나가자" 며 일부가 퇴장하자 "나가려면 나가" 라는 국민회의측 고성이 터져나왔고, 회의장 밖에서는 양당 당직자간에 삿대질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정균환 (鄭均桓) 국민회의.박준병 (朴俊炳) 자민련 총장은 씁쓸한 표정으로 대책 모색차 황급히 회의장 밖으로 나갔다.

방청석의 양당 의원들은 난감한 듯 대부분 눈을 감거나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속에서 기념식은 계속됐다.

소란이 계속되자 金교수는 "강의일 뿐이니 궁금한 게 있으면 나중에 질문해 달라" 고 진화를 시도했으나 자민련측에서는 "학생도 아닌데 누굴 상대로 강연하려고 하느냐" 며 야유를 보냈다.

金교수는 "여기 오기 전 내각제 같은 예민한 얘기는 하지 않는 게 신상에 좋다는 얘기도 들었다" 며 "원고를 보여 달라는 요청도 있었으나 '시녀 교수' 가 되지 않기 위해 응하지 않았다" 고 해명성 호소를 하기도 했다.

특강 직후 조세형 (趙世衡)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은 "박태준 (朴泰俊) 자민련 총재를 모시고 손 한번 들어볼테니 우레와 같은 박수로 지지해 달라" 고 험악한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애썼다.

두 수뇌부는 "양당이 끝까지 단결, 총선 승리를 거두자" (趙대행) , "새 기적의 씨앗이 될 공조체제를 재다짐하자" (朴총재) 고 단합을 거듭 역설했다.

그러나 격앙된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자민련측은 기념식 후 이날 소동에 적잖은 불쾌감을 표시했다.

사실 기념식 석상에는 사태를 예감한 듯 한영수 (韓英洙).박철언 (朴哲彦) 부총재 등 합당론 내지 연대론을 폈던 의원들 정도가 나왔을 뿐 내각제를 주장하는 충청권 의원들 모습이 별로 보이지 않는 등 기념식은 썰렁한 가운데 시작됐었다.

김용환 (金龍煥) 자민련 수석부총재는 내각제 내용을 빼달라는 국민회의 요청을 받고 이날 예정했던 별도 연설 자체를 아예 취소한 뒤 식장에 불참했다.

김학원 (金學元) 자민련 사무부총장은 "내각제의 내자도 꺼내지 말자고 부탁한 국민회의측이 거꾸로 외부 연사를 통해 내각제 불가 발언을 한 것은 약속위반" 이라고 발끈했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국민회의 鄭총장은 "金교수에게 민감한 주제의 언급은 피해달라는 메모도 건넸고, 원고를 보여달라고 요청했으나 안보여줬다" 고 해명했다.

정동영 (鄭東泳) 국민회의 대변인은 이완구 (李完九) 자민련 대변인에게 전화로 "실무진의 연사 선정에 다소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사태가 확대되지 않도록 노력하자" 고 연락해 왔다.

양당은 다음달 8일 양당 지도부가 참석한 재.보궐선거 공천장 수여 행사를 통해 단합을 복원한다는 계획이지만 생각과 기대가 딴판인 양당간 갈등기류를 해소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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