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빼먹는 직업학교]출석부엔 110명,가보니 반도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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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97년 5월 노동부 불시감사 때 다른 층에서 수업받던 학생들을 감사가 진행중인 2층으로 몰래 데려와 머릿수를 채운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감사일정과 항목이 지방노동사무소를 통해 흘러나오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습니다. 지방노동사무소에서 수시감사를 나와도 이사장과 차 한잔 한 뒤 교실을 대충 훑어보고는 가버립니다.

그래서 직업학교는 지방노동사무소를 상전처럼 받듭니다. 지난해말 지방노동사무소 어느 평직원의 모친상 때는 교사 대부분이 이사장과 함께 이사장이 준 부조금 10만원씩을 들고 봉고를 대절해 전남광주까지 문상을 다녀왔을 정돕니다. " 부산 모 직업학교 A교사의 증언이다.

직업학교와 감독관청이 이처럼 유착돼 있으니 정부의 지원금은 '눈먼 돈' 이 될 수밖에 없다.

◇ 고교생 빌려오기 = IMF이후 다양한 직업훈련과정이 개설되었으나 3D업종 기능훈련 등 인기 없는 부문은 훈련생 구하기가 힘들다.

이에 대응한 것이 고교생 빌려오기. 대체로 인근 실업계 고교 학생들이 동원 대상이다.

거양직업학교의 경우 일반인에게 인기가 없는 공유압 과정은 훈련생이 거의 D실고와 D공고 학생들로 구성돼 있다 (표 참조) .부산직업학교는 지난해 워낙 학생동원이 잘되자 '남는' 1학년생 50여명을 사업주의 위탁이 있어야 되는 전자계산 1년과정에 불법 배정했다.

이 학생들은 올 신학기에 동해직업학교 전기내선 1년과정에 입학됐고, 때맞춰 동해에서 6개월과정을 마친 P실고 2학년생 수십명도 부산직업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한 교사는 이를 '학생 맞바꾸기' 로 표현했다.

한 직업학교의 B교사는 "학생이 곧 돈이기 때문에 직업학교들은 학생을 제공하는 실업고에 한명당 일정액씩의 사례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안다" 고 말했다.

◇ 허위출석부 작성 = 지난달 21일 오전 10시30분 거양직업학교. 한창 자동차정비 수업이 진행되고 있어야 할 시간인데도 훈련생 10여명은 어두운 시청각실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학생들은 "수업은 9시에 시작하지만 10시 이전엔 학생들이 오지 않아 오전은 이런 식으로 시간을 때우는 경우가 많다" 고 말했다.

또 이날 다른 반도 정원에 한참 못미치는 학생들을 데리고 수업을 하고 있었다.

공유압반의 경우 주간 A.B 두반을 합쳐 51명이었지만 출석부엔 1백14명으로 꾸며져 노동부에 보고됐다.

거양직업학교가 노동부에 보고한 출석부를 보면 공유압과정은 올 1월 13일에서 2월 8일 사이에 매일 정원 1백18명 (2개반) 중 1백10명 이상이 출석한 것으로 돼있지만 실제 출석자 수는 절반에도 못미치는 36~51명씩인 것으로 확인됐다.

출석부를 조작하는 것은 그것이 학생수에 따라 지급되는 훈련비.급식비.기숙사비 등을 결정하는 근거자료이기 때문이다.

거양직업학교 A교사는 "처음엔 학생들이 잘 나오지만 한달쯤 지나면 무더기로 빠지는데도 노동부엔 지난해 내내 대부분이 출석한 것으로 보고됐다" 고 말했다.

이처럼 조작된 출석부를 기초로 지난해 정부위탁과정에서만 거양직업학교에 15억원, 삼성직업학교에는 9억7천만원의 정부지원금이 각각 지급됐다.

◇ 경영비리 = 직업학교 이사장의 교사월급 착복에 대해 교사들은 "항의하고 싶어도 IMF시대인데다 부산지역 직업학교 이사장들이 교사의 월급을 담합해 놓아 옮겨봐야 소용없기 때문에 침묵할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

'가짜교사' 를 이용해 돈을 빼돌리기도 한다.

거양이 97년3월 노동부에 보고한 교직원 현황표에는 경리여직원 2명과 이사장 운전기사가 공유압과정 보조교사에 포함돼 있으며, 도배 보조교사엔 구내식당 종업원 2명, 경리 여직원 1명이 끼여 있었다.

98년에도 강의를 한번도 하지 않은 이사장 자신이 자동차정비과정 정교사로 등록돼 있었으나 한번도 감사에서 지적되지 않았다.

◇ 허술한 감사 = 지방노동사무소는 수시감사를, 노동부는 감사항목을 정해 1년에 두세번씩 지도감사를 하게 돼있지만 시늉에 그친다.

동해직업학교 자동차정비 훈련생 李모 (27) 씨는 "지방노동사무소 수시감사 2~3일 전이면 학원교사들이 출석을 종용하며, 장기결석자에겐 전화를 걸어 나오게 한다" 고 말했다.

노동부의 지도감사도 마찬가지. 거양은 97년 두차례의 지도감사에서 '양호' 판정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아예 감사가 없었다.

오히려 거양직업학교는 지난해 우수직업교육기관으로 뽑혀 노동부장관 표창을 받은 데 이어 노동부 산하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의해 공유압과정 '우수' 교육기관으로 선정됐다.

지방노동사무소의 감사결과와 두차례의 실사를 토대로 능력개발원이 작성한 이 학교 평가서에는 '강의에 대한 훈련생 참여도 1백%' '중도 탈락률 3%' '취업률 86%' 로 나와 있다.

노동부의 평가만으로 본다면 이들 직업학교는 '직업교육의 요람' 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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