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준비안된 전국민연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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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민연금이 오는 4월부터 전국민에게 확대실시된다.

이에 따라 새로 국민연금에 의무가입하게 된 도시지역주민들에게는 월소득액과 가입신고를 하라는 통지서가 일제히 배달됐다.

신고대상인 신규가입자는 그동안 소득이 잘 노출되지 않았던 변호사.의사 등을 포함한 도시자영업자 8백19만명과 그동안 미가입된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 2백28만명 등 1천여만명으로 현장에선 갑작스런 시행에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전국민 국민연금제에 대해 우리는 정부가 사전 준비가 덜 된 채 시행에 너무 조급증을 나타낸다고 지적해 온 바 있다.

심각한 연금재정의 위기를 빨리 고쳐야 한다는 압박감은 이해되지만 그 해소책과 함께 선진국들이 수십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완성해 온 연금제의 전국확대를 겹쳐 시행하려는 것은 졸속의 감이 없지 않다.

이번에 일제신고에서도 우려되는 점이 한둘이 아니다.

신규가입대상자들은 절차에 따라 일단 다음달 13일까지 동사무소 등에 신고하고 보험료산정에 이의가 있으면 보름간 정정신청을 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1천만명이 넘는 인원이 이 기간 동안 신고와 정정을 마치고 국민연금공단이 이를 처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더구나 새 개정법은 여당단독으로 지난해말 부랴부랴 처리된 뒤 충분한 홍보와 계몽이 이뤄지지 않았다.

더 문제는 보험료 산출의 형평성이다.

정부는 이번 가입자들을 1백10개 업종과 5개 지역등급별로 세분, 신고권장 소득 산정에 정밀화를 기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득산정에 토대가 된 세무자료와 의료보험자료도 허점이 적지 않고 신규가입대상인 무소득자들은 이런 근거자료마저 없다.

자영업자의 경우 소득자료의 신뢰도가 낮은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만큼 보험료 산정의 시비 여지와 대량 납부거부 사태까지 우려된다.

실제 시행 5년째로 접어든 농어민 국민연금도 보험료 미납률이 지난해 40%선에 이르렀다.

정부는 국민연금확대실시와 함께 '저부담 - 고급여체계' 가 '적정부담 - 적정급여체계' 로 바뀌어 기금고갈문제가 해소됐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그러나 기금운용이 지금처럼 방만해서는 소용이 없다.

기왕에 실시된 전국민연금인 만큼 차제에 기금운용의 투명성과 투자의 전문성을 제고해야 한다.

무리한 투자로 손실을 볼 경우 철저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연금 전국민확대에 대해선 법개정 전부터 봉급생활자에게만 부담을 늘려 지운다는 불만과 경쟁력강화가 시급한 세계화 시대에 늘어나는 사회보험 때문에 발목이 잡힌다는 비판이 거셌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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