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아들’ 양용은, 메이저 킹 오르다 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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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관광산업고교를 졸업한 것은 1991년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잘하는 운동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보디빌딩으로 다져진 다부진 몸만이 그의 유일한 재산이었다. 고교 3학년 때 당구 실력은 300. 대학 진학은 꿈도 꾸지 않았다. 고교를 졸업한 뒤 할 일 없이 빈둥거리던 시절, 그의 친구가 뜻밖의 제의를 했다.

“골프 연습장에서 직원을 뽑는다는데 한번 가보지 그러니. 밑져야 본전이잖아.”

골프가 어떻게 하는 운동인지도 모르던 그는 무작정 골프 연습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 골프 연습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낮에는 골프공을 줍고, 밤에는 그 공을 때렸다.

“공이 딱딱 맞아 나가는 느낌이 무척 좋았어요. 골프가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더라고요.”

양용은(右)이 부인 박주영씨와 포옹하고 있다. 박씨는 남편을 응원하기 위해 거주지 댈러스에서 날아왔다. [채스카 로이터=연합뉴스]

이야기의 주인공은 17일 미국 미네소타주 채스카의 헤이즐틴 내셔널 골프장(파 72·7674야드)에서 끝난 PGA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를 꺾고 역전 우승한 양용은(37·테일러메이드)이다. ‘메이저 챔피언’ 양용은은 그렇게 골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농사를 짓던 아버지(양한준·64)는 그를 심하게 나무랐다.

“아니, 네가 제정신이냐. 골프는 아무나 하는 건 줄 알아. 골프는 돈 있는 사람이나 하는 운동이란 말이야. 당장 그만두지 못해.”

아버지는 3년 동안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골프를 그만두라”고 말렸다. 그럴수록 양용은은 오기가 생겼다. 내친김에 골프로 승부를 보자고 마음을 다져 먹었다.

골프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처음으로 필드에 나갔다. 머리 얹는 날, 양용은은 정확하게 101타를 기록했다. 3퍼트를 11차례나 했다. 퍼팅 연습은 물론 퍼터를 잡아보지도 않고 필드에 나갔으니 그 정도 스코어도 다행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4개월 만에 그는 81타를 기록했다. 골프가 한참 재밌던 시절이었다.

1996년 봄, 프로골퍼가 되기 위해 테스트에 응시했다. 당시엔 순위와 상관없이 오버파를 기록하면 프로테스트에 합격할 수 없었다. 양용은은 보기 좋게 미역국을 먹었다. 그러나 그에겐 행운이 따랐다. 결원이 생기면서 그해 8월 추가로 5명의 프로를 선발하는 대회가 경기도 여주의 한일 골프장(현 솔모로)에서 열렸다. 양용은은 5언더파를 치면서 당당하게 프로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보디빌딩으로 단련한 몸을 뽐내고 있는 20대의 양용은. [제주=연합뉴스]

양용은의 절친한 친구인 박경구(37) 프로의 말.

“너무 기뻐서 울고불고 난리가 아니었죠. 당장 술 마시러 갈까 하다가 제가 ‘한번 붙자’고 제의했지요. 그 길로 바로 여주 골프장으로 달려가 둘이서 다시 대결을 벌였습니다.”

박경구 프로는 그날 9홀에서 30타를 쳤다. 양용은은 29타를 기록했다. 이글 2개에 버디를 4개나 잡았다.

“정말 그날은 공을 신들리게 치더군요. 마치 오늘 타이거 우즈를 상대로 압승을 거둔 것처럼 말이에요.”

1997년 겨울, 양용은은 박영주(35)씨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박씨는 원래 유학길에 오를 예정이었지만 양용은의 프러포즈를 거절할 수 없었다.

“5년만 기다려 달라. 반드시 호강시켜 주겠다.”

박씨는 남편 양용은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경기도 기흥의 월세 15만원짜리 단칸방에 살림을 차렸다.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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