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납득 못할 훈장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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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주 정부는 빌 로즈 시티은행 부회장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지난번 외채 만기협상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산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훈장수여는 'IMF 1년' 을 맞는 우리의 마음을 더욱 착잡하게 만든다.

한국 경제가 외채협상을 계기로 다행히 수습의 가닥을 잡아가고 있으니 당시 주역에 대해 인간적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냉정한 이해타산만이 존재하는 미국 금융시장 사람들이 오히려 한국 정부의 훈장수여에 어리둥절하지 않았을까 싶다.

능력과 실적에 따라 보너스와 심지어 진퇴가 결정되는 미국 경영풍토에서 누가 누구를 봐준다는 것은 상상조차 어렵다.

더구나 외채협상의 성과를 두고 아직도 말이 많지 않은가.

정부에서는 성공적인 협상을 대대적으로 홍보해 왔지만 월스트리트에서 당시 협상을 지켜봤던 현지 금융인들은 핏대를 올려가며 지금도 성토하고 있다.

당시 뉴욕에 모인 채권은행단의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해서라도 한국 정부의 지급보증을 확보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정부지급보증만 얻어내면 금리는 타협껏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속내를 알아차리지 못한 한국 협상대표단의 머리 속엔 어떻게 하면 금리를 깎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물론 지금의 잣대로 화급했던 당시 상황을 가늠할 순 없는 일. 일부에서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배째라" 를 외치는 배짱전술로 나갔어야 옳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어쨌거나 좀더 냉정하게 대처하고 작전을 구사했더라면 보다 유리한 조건을 얻어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부인하긴 어렵다.

바가지를 썼느냐의 여부를 떠나 협상의 과정과 결과 모두가 채권단이 의도했던 대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금리를 잔뜩 높게 매겼을 뿐 아니라 떼일 염려도 없는 거래를 성사시켰으니 채권자 입장에서는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일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국정부가 훈장수여까지 들고 나섰으니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권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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