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방만 경영 뒤엔 노조-임직원 나눠먹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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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감사원이 지난해 7월부터 1년간 전체 24개 공기업 가운데 19곳에 대해 감사를 벌였다. 이 중 15곳(78.9%)에서 임직원에게 급여 등을 편법 지급한 사실이 적발됐다. 공기업의 방만 경영이 감사원 감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공기업의 방만 경영은 왜 개선되지 않을까. 감사원의 한 국장급 간부는 “기업의 주인이 없어 (간부와 노조가)나눠먹기에 부담이 없기 때문”이라며 “직원의 복지나 급여 향상은 곧 임원의 혜택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노조가 터무니없는 요구를 내놔도 중간 관리자들이 이를 거부할 이유도, 실익도 없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임원이나 중간 관리자들이 노조와 타협해 ‘나눠먹기’를 하지만 내부적으로 이를 감시·견제하는 기능과 역할을 상실하고 있는 게 주요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수자원공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수자원공사는 노조의 요구에 따라 2003~2007년 복지기금 가운데 192억3000만원을 직원들에게 현금으로 부당 지급했다가 감사원에 적발됐다. ‘임원에게는 복지기금을 지원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내부적으로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자 임원 20명에게 학자금 지원, 명절 기념품 지급 등의 명목으로 3900만원을 부당 지급했다. 전형적인 ‘나눠먹기’인 셈이다.

한국감정원도 최근 3년간 자가운전보조비·자기계발비 등 급여성 복리후생비 148억여원을 지급해놓곤 이를 총인건비에서 누락시킨 사실이 적발됐다. 1급 이상 간부들은 최근 3년간 25명이 국외 출장을 가면서 예정에 없던 지역을 끼워넣고 항공료와 숙박비 등을 청구해왔다. 남미에 출장을 갔다가 프랑스 관광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항공료 1600만원을 추가 청구한 간부도 있었다.

사장이 한술 더 뜨는 경우도 있었다. 한 중소규모 공기업의 A사장은 2005~2008년 강남의 한 칵테일 전문점에서만 20회에 걸쳐 600여만원을 썼다. 지인들에게 ‘한잔’ 대접하는 비용은 법인카드에서 빠져나갔다. 9차례 골프비용 240만원도 마찬가지였다. 이 회사는 직원들의 초과근무 여부를 허술하게 관리해오다 감사원에 지적됐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는 아예 임원들에게만 해당하는 ‘특별수당’을 신설해 3억9000만원을 중복 지급해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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