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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정착 도울 근본적 대책 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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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탈북자 460여명의 집단 입국으로 정부의 탈북자 정책에 적잖은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조용한 외교'라는 정부의 기존 방침은 그대로 유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선 북한은 탈북자 문제를 공식 인정하지 않고 대북 적대정책의 산물로 간주하는 상황이다. 탈북자들이 산재해 있는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이 북한과도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현실 또한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갑작스레 공세적 입장으로 전환할 경우 자칫 남북관계만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아직도 화해와 협력의 평화공존을 지속해야 하는 한반도 상황은 탈북자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 등 여러 요인을 두루 감안해 문제를 조용하게 풀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만 이번 대량 입국 사태를 계기로 정부의 정책이 공세적이진 않되, 보다 적극적인 입장으로 바뀌어야 할 필요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앞으로 탈북자들의 입국은 그 수와 빈도에서 계속 늘어날 게 분명한 만큼 기존의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입장만으로는 문제해결이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아시아 각국을 떠돌고 있는 탈북자들이 자기 의사에 따라 한국행을 희망할 경우 그 숫자에 상관없이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수용해야 할 것이다.

공명심과 대가를 노리고 일부 민간단체와 개인 브로커들이 개입함으로써 탈북자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일도 이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막아야 한다. 탈북의 근본원인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북한의 경제사정이 개선될 수 있는 제반 환경을 조성해 가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는 입국한 탈북자들의 정착지원 및 사회적응 과정에 있다. 최근 급증한 탈북자만으로도 정부 수용시설은 과포화 상태에 있다. 탈북자 지원을 위한 적정 규모의 예산과 인력, 그리고 그에 알맞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아울러 민관 합동으로 탈북자 정착과정을 모범적으로 창출해 내는 방안도 적극 고민해야 한다.

이제 탈북자 문제는 '생존형 체제 탈출'이 아닌 '통일형 체제로의 이전'이란 관점에서 봐야 한다. 북한 주민들의 원만한 정착을 통해 향후 통일과정을 미리 준비하는 작업이 돼야 한다. 보다 적극적인 탈북자 지원정책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극동문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