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쉼터 정자]5.정읍 피향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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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연향 (蓮香) 이 그윽한 연못을 낀 정자. 이러한 곳에서는 누구나 시인이 된다.

또 정자를 내려와 주변을 살펴보면 1천년전 이 땅에 학문의 뿌리를 내린 선현의 발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다.

정읍 (井邑) 은 한 척 (약 30㎝) 깊이만 땅을 파도 우물이 생길 정도로 물이 풍부한 고장이어서 곡창지대로 유명하다.

'호남제일정' 이란 현판을 가슴에 안고 서 있는 피향정 (披香亭, 정읍시태인면태창리) .정자에서 내려와 음식점들을 지나 서쪽으로 향하면 은은한 연향이 코끝을 스친다.

붉은 홍련으로 가득한 하연지 (下蓮池)가 나그네에게 안겨주는 선물이다.

"원래 정자주변에 연이 자라는 연못이 두 곳이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70여년전 상연지 (上蓮池)가 메워졌고 피향정과 하연지사이에 음식점이 들어서 정자와 연못이 갈라서게 됐어요. "

정읍시청 문화계 서인석 (37) 씨는 정자의 한쪽 날개인 상연지가 사라지고 그나마 남은 하연지마저 정자와 떨어지게 된 것을 안타까워한다.

피향정과 하연지는 연말쯤 하나가 된다.

정읍시가 연말까지 정자와 하연지사이의 음식점 일부를 철거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피향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고운 (孤雲) 최치원 (崔致遠, 857년~?) 을 추모하는 수많은 현판들. 김종직 (金宗直).김상헌 (金尙憲) 등 조선의 거유 (巨儒) 들이 고운을 기리며 만든 것이다.

"동방 유학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고운선생이 신라말 수령으로 일한 곳이 지금의 정읍.서산입니다. 그중에서도 피향정은 기울어져가는 국운을 되살리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고운선생의 휴식처였습니다. "

정읍문화원 최현식 (75) 원장은 피향정을 출발지로 삼아 고운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라고 말한다.

피향정에서 내려와 10㎞쯤 칠보면쪽으로 나아가니 무성서원 (武城書院, 칠보면무성리) 이 나타난다.

무성서원에는 조선시대부터 고운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원래는 고운이 머물렀던 쌍계사에 있었으나 조선시대 들어 유림에서 "불가에 유학의 시조를 모실 수 없다. " 고 주장해 1784년 무성서원에 모셔졌다.

유상대 (流觴臺, 칠보면시산리) 는 고운의 거침없는 문장력을 엿볼 수 있는 곳. 상류에 잔을 띄워 잔이 내려오는 동안 시 한수를 단숨에 지었다는 전설이 어려있다.

글.사진 = 송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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