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대책없는' 구청 대책본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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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큰일이 날 때마다 구청.시청 등 지방자치단체는 재해대책본부를 만드느라 법석을 떤다. 긴급전화가 가설되고 컴퓨터.팩스.복사기 등을 새로 들여온다.

공무원들도 총동원돼 조를 나눠 밤샘 근무를 하고 상급 단체장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들의 순시도 끊이지 않는다.

수만명의 수재민을 낸 이번 수도권 집중호우 사고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청을 비롯해 서울지역 25개 구에도 대책본부는 어김없이 들어섰다.

그러나 그동안 사고 때마다 그랬듯 이번에도 엉성한 대책본부는 주민들의 원성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6일 오전 7시부터 서울노원구상계6동 주공아파트 4천3백 가구에 전기.상수도가 끊기고 전화마저 불통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아파트 변전실에 물이 차 전원을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1만3천여 주민의 고통은 곧바로 시작됐다. 화장실에선 악취가 진동하기 시작했으며 끼니도 걸러야 했다.

복구를 고대하던 주민들은 밤이 되자 가로등도 꺼진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이미 절반 가량의 주민들이 '엑소더스' 를 마친 이날 오후 10시30분. 노원구청 재해대책본부는 이날 처음으로 "아파트 2백40가구가 단전이 됐다" 고 밝혔다. 1, 2단지 전 가구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현장을 확인한 취재진이 상황을 재차 물어도 "2개 동에만 문제가 생겼다" 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30분 뒤 재해대책본부는 피해 가구가 4천3백가구라고 정정 발표했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2단지 관리사무소장은 "6일 오전 피해를 알리기 위해 대책본부를 찾았으나 '동사무소에 신고하라' 며 떠넘겼다" 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대책본부의 거짓말은 계속됐다. "급수차를 동원해 물을 공급했다" 는 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이날 오후내내 수재민 공식 집계에도 들지못하는 상계동 1만3천여 주민들은 간이 화장실 하나, 발전기 1대도 지원못해 주는 구청을 원망했다.

'대책없는' 재해대책본부의 실상을 드러낸 곳이 비단 여기 뿐일까. 지금 수재민들은 구멍뚫린 하늘보다 법석만 떨고 도움은 못주는 사람들을 원망하고 있다.

이상언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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