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의 이제하씨 시집·음반 잇따라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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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환갑 나이에 20대 청춘 끝자락의 가을 바람 같은 허무를 온몸으로 지고 다니는 삶, 그 자체가 시인일 수 밖에 없는 이제하(李祭夏)씨. 혁명도 사랑도 어찌해 볼 수 없던 60년대 초 젊음을 축축히 적셨던 서구적 지성과 낭만, 그리고 원초적 한을 시·소설·그림·평론, 그리고 통기타의 노래로 풀고 있는 영원한 60년대 청춘의 전방위 예술가.

그의 노래를 들은 한 동료 여류작가는 “펑펑 울면서, 삶보다 더 먼저 시작된 그 시원의 설움과 아픔으로부터 위안 받았다”고 실토했다. 커다란 집 차고를 세내어 원룸식으로 널따랗게 꾸민 평창동 이씨의 집은 동료·후배 문인 등 예술인의 사랑방이기도 하다.

그 방에서 음악도 듣고 비디오도 보고 술도 마시고 예술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그리고 이씨의 노래도 듣는다. 남녀, 나이 구분 없이 제각각 편한 자세로. 삭막하고 쓸쓸한 세상, 예술이 흐르는 사랑방 분위기를 그대로 전하는 이씨의 시집 '빈들판'과 '이제하 노래모음' CD음반이 출판사 나무생각에서 나와 대중에게 다가가게 됐다.

CD음반에는 그의 시 8편에 그가 직접 멜로디를 달아 노래한 곡들이 들어 있다. 시집에는 59년 '현대문학'추천으로 시단에 나온 이래 40여년간 발표한 시들 중 읽으면 그대로 가슴에와 안길 수 있는 시와 신작시 등 50여편을 실었다. 이씨의 시에는 허무의 끝이 그리움인양 떠도는 바람의 노래가 들어있다. 해서 그의 시들은 아직도, 아니 영원히 가장 인간적인 의미의 낭만진행형이다.

“장돌뱅이 차림을 하고 꼭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이/저기만큼 걸어가고 있어/어릴 적 동뫼로 산소 가던 일, 할아버지 상여 뒤를/따라 가던 일들을 연거푸 생각하며/낯이 붉어/재개재개 따라 언덕마루까지 와 보면 거기/고운 자줏빛으로 서럽게 해 지는, 노을지는 모습을 물감으로 그린 듯 언어로 옮기고 있는 시 '노을'전문이다.

인생이라는 그 캔버스에는 물감으로도 언어로도 그리지 못한 우리의 생래적 그리움이 텅텅 빈 여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씨가 시집과 한 묶음으로 펴낸 CD 음반 노래는 쉰바람 지나는 턱턱 거리는 음성에 아직 저물 수 없는 사랑과 그리움이 그대로 묻어난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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