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영명예회장 북한 방문기]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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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우리 일행은 방북기간 내내 북한사람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평양에 머무르는 동안 냉면도 많이 먹고 공연 구경도 실컷 했다.

우리가 다닐 때는 항상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 金容淳) 사람들이 동행했다.

그들은 친절하고 세련된데다 무엇을 물어도 대답을 잘했다. 굳이 북한자랑을 한다든지, 자기네 이념을 주장하는 모습은 볼 수 없어 우리끼리 "많이 달라졌다" 는 얘기를 자주 했다.

소떼와 함께 판문점을 넘어선 16일 오전. 형님은 5천㏄급 벤츠 승용차에 올랐고 나머지 일행은 1천9백㏄급 벤츠에 2명씩 나눠 탔다.

판문점에서 평양까지는 1시간30분 거리. 평양까지 연도에서는 특별히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식량난에 시달려 굶어 죽는 사람이 줄을 잇는다고 하지만 그런 기색을 살펴볼 기회는 없었다. 주변 논밭도 겉으로는 그저 한가로이 보였다.

평양도 그랬다. 도로가 널찍널찍하게 잘 빠졌고 시내 건물들은 규모가 대단했다.

거리도 깨끗해 아름다운 도시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시내에서 그 유명한 1백5층짜리 유경호텔이 눈에 들어왔다.

뼈대는 다 세웠는데 돈이 없어 공사가 중단된지 오래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위원회 직원이 "저것이 바로 유경호텔" 이라고 자랑해 "언제 완공되는가" 물었더니 "잘 모르겠다" 며 말끝을 흐렸다.

만수대 의사당에 도착하니 김용순위원장이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김용순씨는 형님에게 "회장선생은 다시 오는데 어찌 10년이나 걸렸습니까" 하면서 "김정일 (金正日) 장군님은 모든 일을 선생께 맡기면 잘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고 덕담을 건넸다.

첫날 저녁은 목란관에서 아태평화위원회 주최 환영만찬이 열렸고 예술단 공연도 봤다.

"서로 조금만 양보하면 금방 통일이 될 것" 이라는 얘기들을 주고 받았다.

북한에서는 공연단체가 어찌 그리도 많은지 매일 몇 가지씩 다른 공연을 봤다. 그중에서도 우리 일행이 감탄했던 것은 17일 교예극장 (서커스 극장)에서 본 서커스 공연이었다.

우선 웅대한 교예극장 규모에 놀랐고 서커스 단원의 현란한 기량에 말문이 막혔다.

모스크바.베이징 (北京).동유럽 등에서 세계 최고라는 서커스를 꽤 구경했지만 그보다 훨씬 잘 하는 것 같았다. 서커스 단원들의 덩치가 러시아.중국 단원보다 더 큰데도 공중 곡예가 자유자재였다.

무용이든 곡예든 북한사람들은 섬세한 맛보다 힘과 절도를 강조하는 느낌이었다.

우리 형제들은 구경을 많이 했지만 몽헌이를 비롯한 경협실무진은 수시로 북측 관계자들과 협의하느라 바빴다.

실무진은 자주 형님에게 협의내용을 보고했는데 89년 방북때 양측이 충분히 논의했던 때문인지 별다른 이견이 없이 우리측 구상대로 잘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평양의 첫 사흘간은 금강산 개발이나 자동차조립공장 등 경협사업의 세부적인 전개방안을 논의했고 돌아오기전 평양에서의 마지막 이틀은 합의서 내용을 확정하는데 주력했다.

북측 사람들은 우리 실무진이 각종 경협사업에 따르는 과제나 문제점을 설명하면 "곧 해결할테니 빨리 추진토록 하자" 며 계속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고 한다. 사업하는 사람들이니 정치얘기는 아예 하지 않았다.

우리가 가장 자주 대접받은 음식은 냉면이었다. 북한 냉면은 종류도 꽤 많았다.

둘쨋날 (17일) 저녁에는 김용순씨가 북한 명물이라는 '감자냉면' 을 대접했는데 푸석푸석하고 꺼칠해서 도무지 입에 맞지 않았다.

나는 "고려호텔 식당의 냉면이 좋다는데 맛 좀 봐야겠다" 며 혼자 빠져나왔다. 마침 대기중이던 운전기사 2명이 있어 "안내 좀 해달라" 했더니 흔쾌히 응했고 '진짜' 평양냉면 맛을 즐길 수 있었다.

수중에 달러와 바꿔둔 북한돈 ( '외화와 바꾼 돈표' ) 이 있어 운전기사를 시켜 계산토록 했다.

평양 체류기간중 낮시간에는 대동강.김일성동상.당 창건기념탑 등을 둘러보고 백화점도 구경했다.

대성백화점에서는 다른 것은 볼품없어도 갖가지 토속주가 진열된 주류코너는 볼만 했다.

고향가기 전후로 두번 들른 원산에서는 6.4차량종합기업소 등 산업시설을 시찰했다.

형님은 89년에 이미 둘러 본 시설이어서 원산초대소에서 쉬었다. 공장이라고 하나 규모가 영세하고 허술해 손볼 곳이 많은 듯했다.

고향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후 평양에서의 마지막 밤에는 남북이 하나 될 수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를 가졌다.

인민문화궁전에서 방북 후 처음으로 우리측 주최로 연회가 열렸다.

경협이 잘 마무리된 터라 우리측과 아태평화위원회.민족경제협력연합 사람들은 긴장을 풀고 부담없이 술잔을 주고 받았다. 이어 노래판이 벌어졌다.

우리측에서는 간판스타인 김윤규 (현대건설부사장) 씨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얌전해보였던 박세용 (현대상선사장) 씨도 애절한 옛 가락을 구성지게 뽑아 환호를 받았다. 형님도 김윤규씨의 부축을 받아 한곡 했다.

나도 한곡 부르고 싶었으나 가사가 기억나지 않아 아쉽지만 그만뒀다.

다음에 들를 때는 괜찮은 가요반주기라도 한대 가져가야겠다. 북에서는 어여쁜 인민가수까지 나와 흥을 돋웠다. 남북은 막바지에 '아리랑' '고향의 봄' 등을 합창하면서 석별의 정을 나눴다.

김용순씨는 "김정일장군님이 이번에 오신 분들을 한분도 빠짐없이 다시 초청하라 하셨으니 이런 좋은 자리를 다시 가질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마지막 밤을 보낸 우리는 23일 아침, 숙소인 모란봉초대소에서 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8시15분쯤 평양을 출발했다.

판문점에 도착하니 9시45분이었다.

판문각에 않아 배웅나온 북측 사람들과 차를 한잔 했다. 그 순간 7박8일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죽기 전에 볼 수 있을까 했던 고향을 방문했고 금강산.묘향산까지 구경했으니 이제는 여한이 없다. 가을에 유람선이 뜨고 금강산도 남북이 함께 개발하게 됐으니 가슴 벅찼다.

앞으로도 일이 잘 진행돼 나같은 실향민들이 50년 맺힌 한을 풀고 언제든 고향의 가족들을 상봉할 수 있기를 기원했다.

정리 = 이재훈.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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