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북한 잠수정]예인항구 왜 바꿨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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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2일 오후4시33분 북한 잠수정 발견 즉시 해군은 비상작전에 들어갔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예인준비를 마쳐야 했고, 있을지 모를 돌발사태에 대한 위험부담도 있었다.

그래서 날이 새기 전에 해군기지로 예인하기로 작전을 짰다.

처음엔 잠수정을 해체할 수 있는 장비가 갖춰진 동해항 해군기지로 잠수정을 옮길 계획을 세웠다. 잠수정을 예인하기 위해 해군 수중파괴대 (UDT) 를 보내 잠수정을 밧줄로 동여맸다.

그다음 해군 초계함 (PCC) 이 잠수정을 끌어 예인작업이 시작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잠수정이 한쪽으로 가라앉기 시작한 것이다.

잠수정은 점점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선체의 머리부분 5분의1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바닷속에 잠겨 80도 경사로 기울어졌다.

예인 작업팀은 급해졌다.

잠수정이 가라앉으면 밧줄이 끊어져 깊은 바닷속에 빠져버릴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작업팀은 군 수뇌부와 긴급 협의 끝에 가장 가까운 해군기지가 있는 하조대 기사문항구로 가기로 했다.

예인선은 시속 5㎞의 속도로 기사문기지로 움직이기 시작해 23일 오전1시30분쯤이면 기사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합동 신문조들도 승조원의 생존 가능성에 대비, 신문을 위해 기사문기지로 달려갔다.

그러다가 예인선은 갑자기 선수를 남쪽으로 돌려 처음 계획대로 동해항기지로 방향을 잡았다.

이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잠수정이 80도 경사로 기울어 있어 기사문기지 해안의 많은 암초에 걸릴 것이 우려되고, 보안상의 문제가 있어 예인항구를 바꿨다" 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정치적 고려가 있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남북 화해분위기를 감안해 '시간 벌기' 를 했다는 추측이다.

23일 오전10시 판문점 유엔사.북한의 장성급 대화가 열린 뒤 잠수정 개봉작업에 들어가기 위해 이날 정오가 지나서야 도착할 수 있는 동해기지를 택했다는 분석이 그것이다.

또 정주영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북한에서 돌아오는 시간을 피하려 했다는 것이다.

김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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