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으로]유재현著 '생명을 풀무질하는 농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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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간다. 이런 진리를 사람들은 쉽사리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생명의 근원인 땅을 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마구 파뒤집는지도 모르겠다.

투철한 환경 운동가로, 독실한 종교인으로, 또 농부로서 풀무원 공동체를 일군 원경선 (84) 옹의 삶을 그린 '생명을 풀무질하는 농부' 가 나왔다 (한길사刊) .40여년간 생활 공동체를 운영해오고 있는 원옹은 이웃을 도우면서 20년전부터는 환경을 염두에 둔 유기농법을 실천해온 인물로 유명하다. 이 책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원옹은 저자에게 "진실보다는 허위가 날뛰는 시대에 내 일이 부풀려질까 걱정" 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저자인 유재현 전 경실련 사무총장은 가능한 한 원옹의 육성을 그대로 담으려고 노력했다.

풀무원 공동체의 생활철학은 '함께 일하고 함께 먹고 함께 나누자' 는 것. 이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가진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 갈 곳 없는 사람이라도 괜찮다. 땀 흘려 먹거리를 마련할 수 있기만 하면 한 가족이 될 수 있다.

공동체를 꾸리는 일이 처음부터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원옹은 자신부터 가진 것 전부를 내놓았다. 손수 땅을 일구고 거기서 얻은 수확물도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나머지는 이웃과 나누었다. 이런 나눔이야말로 이웃의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풀무' 는 철을 강하게 벼리는 도구. 구약성서에는 나쁜 사람을 선인 (善人) 으로 인도한다는 의미에서 인간풀무질이라는 어휘가 등장한다. 그런 고귀한 뜻을 이어받아 그는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을 기꺼이 맞아들여 함께 밭을 갈고 농사를 지었다.

그렇게 농사 일을 하다가 농약의 폐해를 깨닫게 되었다. 이웃 사랑도 중요하지만 인류를 위해서는 깨끗한 먹거리를 재배하는 일이 먼저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농약 없이 유기농업을 시작하다 보면 보통 사람도 환경문제에 눈을 돌리리라 믿었다. 보통학교 졸업이 정규교육의 전부인 그는 이런 활동으로 95년에는 유엔환경계획 (UNEP) 의 '글로벌 500' 상까지 받았다.

원옹은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마구 뿌려대는 것을 두고 '간접살인' 이라고 비난한다. 하나의 유기체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자연의 섭리를 무시하는 행위라는 것. 일일이 벌레를 잡고 손수 퇴비를 만드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환경이라는 개념조차 희미하던 시절부터 생명존중 사상을 실천해온 그의 궤적은 깨끗한 공기.물.흙이 소중한 이 시대에 단연 돋보인다.

홍수현 기자 〈shin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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