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북한, 인도적 차원서 여기자 즉각 석방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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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는 미국 국적 여기자 2명에 대한 북한의 중형 선고에 즉각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이언 켈리 국무부 대변인은 북한의 발표가 전해진 8일 새벽(현지시간) 곧바로 “우리는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여기자들의 석방을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미 정부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여기자들 가족의 심정과 같다”며 “북한이 인도적 차원에서 여기자들을 즉각 석방할 것을 다시 한 번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미국 주요 언론들도 북한의 발표를 신속하고 비중 있게 보도했다.

재판이 종료된 만큼 미 정부는 이제 여기자들의 석방을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비록 예상을 뛰어넘는 중형이 선고됐지만, 어떤 형태로든 재판 종료가 석방의 전제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동안 ‘유죄 판결 후 국외 추방’이라는 형식의 석방을 기대해 왔다. 미 국무부가 북한의 유죄 선고에 대해 직접적인 비난을 삼가고 ‘우려’ 수준에 머문 것도 이제부터 시작될 협상 국면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미 정부는 그동안 공식적으론 여기자 2명이 자국의 실정법을 위반했다는 북한의 주장을 “근거없다”고 주장해 왔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북한과 미국은 뉴욕의 북한대표부를 통해 양자 접촉을 해왔으며, 이제부터 본격적인 석방교섭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자들의 억류 기간이 두 달을 넘어서면서 미국 내에선 “오바마 정부가 과거 정부에 비해 미국인 보호 노력이 미흡한 것 아니냐”는 여론이 커졌다. 특히 최근 들어 여기자들의 가족이 언론에 출연하고, 워싱턴 등 대도시에서 석방을 기원하는 촛불집회까지 열리자 미 정부는 적지 않은 압박감을 받게 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의 거듭되는 도발 행위 와중에 “여기자 석방이 우선 관심사”라고 말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미 정부는 켈리 대변인의 발표대로 동원 가능한 모든 채널을 가동할 것으로 보인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직접 북한에 사실상의 사과 서한을 보낸 것도 이를 위한 전초전으로 풀이되고 있다.

클린턴은 7일 ABC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자리에서 “우리는 (여기자 2명의 석방을 위해)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행동을 취했다”며 북한에 서신을 보낸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서한에서 여기자 2명이 북한 지역에 들어간 것을 사과하고, 석방을 호소했다고 ABC방송은 전했다. 방송은 “서한 발송은 오바마 행정부와 북한 당국 사이에 이뤄진 최고위급 접촉”이라고 보도했다. 클린턴은 자신의 서한에 북한이 응답했다고 밝혔으나 응답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재판이 종료됨에 따라 여기자 2명이 속한 커런트TV의 공동 설립자인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방북 가능성이 더욱 주목받게 됐다. 미 국무부도 고어의 방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워싱턴=이상일·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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