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굴지의 건설회사, 은하철도 999를 견적 내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17호 12면

놈들이 돌아왔다. 이번엔 ‘은하철도 999’다.
무슨 소리인지 어리둥절한 분들을 위해 잠시 설명. 여기서 ‘놈들’이란 일본 마에다건설공업주식회사의 ‘판타지 영업부’ 사원들이다. 우선 마에다건설로 말하자면 자본금 234억6000만 엔, 계열사를 포함한 종업원이 4400여 명에 달하는 초대형 토목건설 전문업체. 20세기 최대 프로젝트로 불리는 도쿄만 아쿠아라인 인공섬을 비롯해 도쿄도 청사, 요코하마 베이브리지, 후쿠오카 야후재팬 돔 등 일본 내에서 의미 있는 대형 공사를 해왔다.

하지만 이들에겐 고민이 있었다. 건설업계를 보는 세간의 시선이 단순무식, 비리결탁, 비전부재 등 너무 부정적이었던 것. 여기에 ‘인류의 꿈이 하나 둘 이뤄지는 시대에 건설회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까지 겹쳐졌다. 그 결과 2003년 만든 것이 ‘판타지 영업부’다.

‘은하철도 999’ 발차대 설계도(위)와 애니메이션 장면들

이들의 과제는 TV나 만화에 나오는 공상의 구조물을 실제로 설계해서 견적까지 뽑아내는 것. 달랑 4명의 직원들이 맡은 첫 번째 임무가 '마징가Z 지하기지를 건설하라'(스튜디오 본프리 펴냄)였다.

만화영화 속 설정을 고스란히 현실에서 재현하기 위해 이들은 첨단 건설기술과 기법을 총동원했다. 이 이야기가 인터넷에 연재되면서 당시 일본 네티즌들은 폭발적인 지지를 보냈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하게 풀어가려는 ‘진정한 프로’에 대한 경배였다.

‘건설 소요 예산 72억 엔. 적의 습격이 없다는 가정 아래 6년5개월 소요’라는 마징가Z 지하기지 견적서를 뽑아낸 이들이 도전한 두 번째 과제가 ‘은하철도 999’가 우주로 날아오르는 발차대다. 언젠가 우주로 여행을 떠나는 ‘은하철도 999’가 만들어진다면, 그 발사대는 건설업체인 마에다가 만들고야 말겠다는 신념이다.

원작 만화영화에 나오는 우주 레일을 높이 99.9m라고 설정한 이들은 좌우 지지대 없이, 210t의 기차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기울기 20도짜리 철제 구조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만만치 않은 현실에 부닥친다. 그래서 ‘프리캐스트’와 ‘REED’ 공법 같은 현장 용어들이 난무하는 이 책은 차라리 훌륭한 ‘철제 구조물 현장’ 교재다. 또한 엉뚱한 발상을 하나하나 구체화시켜 가는 아름다운 기록으로도 읽힌다.

이들은 마침내 견적을 뽑아낸다. ‘메가로폴리스 중앙스테이션 은하초특급 발착용 발차대 일식-37억 엔(약 500억원), 공기 3년3개월’. 토지비는 제외된 가격이다.
이 책을 펴낸 스튜디오 본프리의 문성기 국장은 “지난 4월 1일 마에다건설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출된 오바라 고이치가 ‘판타지 영업부’의 최고 책임자였던 A부장”이라고 전한다. 마에다건설이 이제 실제 상황에서 어떤 블루오션을 창출할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