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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 총장 맞수, 장학재단 맡아 ‘민·관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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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과 이경숙 전 숙명여대 총장은 한국 여성계의 리더다. 1943년 3월생인 두 사람은 66세 양띠 동갑이다.


이화여대와 숙명여대의 상징으로 통하는 두 사람은 각각 법학과 정치학을 전공했다. 그런 두 사람이 맞수 경쟁을 한다. 민간 최대 장학재단인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과 정부가 세운 국내 최대 규모인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으로서 실력 경쟁을 하는 것이다. 2006년 10월 출범한 삼성장학재단은 전체 기금이 7000억원, 5월 7일 돛을 올린 한국장학재단은 올해 예산만 1조976억원이다.

두 사람은 총장 재임 때도 맞붙었다. 신 이사장은 “2006년 이화여대가 120주년, 숙명여대가 100주년을 맞았을 때 총장으로서 홍보 경쟁도 했다”며 “경쟁만 하다 처음으로 학술 교류를 하며 친분도 쌓았다”고 말했다.

장학 업무는 신 이사장이 2년 선배다. 2006년 10월 삼성장학재단 출범과 동시에 이사장을 맡았다. 크리스천아카데미에서 여성 노동자 교육을 하면서 몸에 밴 꼿꼿한 근성으로 원칙대로 재단을 이끌어 왔다는 평이다. 그의 강단은 2006년 10월 삼성장학재단 이사진을 꾸릴 때 옛 교육인적자원부 관료의 낙하산 인사에 제동을 걸면서 확인됐다.

신 이사장은 “7000억원을 맡은 뒤 잠을 못 잤다. 한 푼이라도 아껴 어려운 학생을 지원해야 하는데 관료 월급으로 나가는 것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의 장학 틀을 완전히 바꾼 ‘후견인(교사)-수혜자(학생)’ 지원 방식을 만들었다. 교사·학생 4613쌍을 지원했고, 올해는 6800쌍으로 늘릴 예정이다. 신 이사장은 “돈만 대 주면 효과가 없어 고민 끝에 ‘교사-학생’ 커플 지원 시스템을 만들었다”며 “교사가 어려운 아이 한 명을 돌보는 교육복지 장학”이라고 설명했다. 1년 예산과 지출 내역도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해 투명성을 재단의 생명으로 삼고 있다. 신 이사장은 이화여대 1년 후배인 한명숙 전 총리 등 노무현 정부 인사와 친분이 두텁다.

반면 이 이사장은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 출범 직전 최고 실세로 통하는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맡았다. 16년 동안 대학을 이끈 4선 총장으로 인맥이 다양하다. 그는 총장 퇴임 후 “친정 일에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만큼 자중했다. 그러던 그가 교육과학기술부 위탁 재단인 ‘한국장학재단’의 이사장으로 활동을 재개한 것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장학재단 직원들이 이 이사장이 취임하자 힘을 받았다”며 “재계와도 폭넓은 인맥을 갖춰 민간 기부금 유치에도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지지 않으려는 자존심이 강하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여고를 나와 숙명여대 입학·졸업 수석을 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신 이사장과 라이벌 관계가 다시 형성됐다”고 전했다.

이 이사장은 말을 아끼지만 포부는 크다. 한국장학재단을 세계 최고로 키운다는 목표다. 주택금융공사 학자금 대출을 국가장학기금으로 전환해 대출 금리를 최대 1.5%까지 낮출 수 있도록 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몇 차례 만났다. 올해는 100억원 규모 이상 96개의 민간 장학재단을 시작으로 2141개 재단을 모두 홈페이지에 연결하는 ‘통합 정보망’을 갖출 계획이다.

재단의 이인식 학자금 여신부장은 “이 이사장은 짐도 안 풀었는데 주말에도 나와 기획안을 만들고 지도층을 만나 조언을 구하는 열정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두 재단 사이에는 미묘한 신경전도 있다. 교과부가 삼성재단을 한국장학재단에 편입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서다. 신 이사장은 “초·중·고생 장학은 우리가, 대학생은 한국장학재단이 맡아 협력하며 발전시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과부 정병선 학생학부모지원과장은 “이 이사장이 곧 삼성재단을 방문해 협력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처럼 진정한 리더를 배출하는 한국 최고의 재단이 되도록 두 이사장이 솔선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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