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反外풍조 애국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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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벌써부터 당면한 외환 및 금융위기에 대한 절박감이 풀리고 이대로 잘 넘어갈지 모른다는 이완된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기업의 파산과 실직에 따른 불안감 때문에 책임을 외국에 돌리려는 태도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위기를 벗어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고 소비절약운동과 반외세운동을 과도하게 벌이면 그것은 애국하는 길이 아니다.

우리가 무심하게 쓰고 있는 'IMF사태' 라는 표현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외국인도 많다.

IMF가 사태를 발생시킨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파격적으로 지원했는데 왜 손가락질하느냐는 지적이다.

당면한 외환 및 금융위기를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지만 계속 차입해야 하는 막대한 외채의 원리금을 갚아 나가려면 우리 상품의 수출과 외국인투자 외엔 길이 없다.

그런데 최근 국내외 언론에 보도된 대로 수입상품을 기피하고 관련기업에 협박성 전화를 하거나 심지어 외제차에 주유 (注油) 를 거부하는 분위기는 상품수출과 외자유치에 찬물을 끼얹는다.

대통령이 아무리 외국기업에 의한 인수.합병이 쉽게 이루어지도록 제도를 바꿔도 국민들이 외국인과 외국상품을 배척하는 것으로 외국인의 눈에 비치는 한 외국인은 투자하기를 주저할 것이다.

일부에서는 왜 연예인과 투기꾼을 그렇게 후대하느냐는 말까지 하지만 결국 마이클 잭슨은 1억달러라는 거금을 투자하기로 했고 소로스도 곧 투자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같은 투자가 씨가 돼 더 많은 외국인이 들어와야 우리의 대외신인도도 좋아지고 우리는 위기를 넘길 수 있다.

현재의 위기를 넘기면서 차제에 우리는 기본적인 인식을 바꿔야 한다.

외국자본이 들어와 세운 공장에서 우리 근로자가 만들어 수출하는 물건과 우리 기업이 해외공장에서 만든 것을 똑같이 아껴주어야 한다.

문제는 누가 값싸게 품질좋은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를 보고 판단하고 소비해야 한다.

편협하고 폐쇄적인 방법으로 애국하는 태도에서 개방사회에서 세계시민의 일원으로 동참한다는 의식을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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