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인도네시아]6.언론도 외환위기 몸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인도네시아 최대 일간지 콤파스지 본사가 있는 슬라탄지역의 팔메라가 (街)에서 신문을 파는 율리아 링시 (24) 는 요즘 영 기분이 좋지 않다.

사람들이 도무지 신문.잡지를 사보지 않는 탓이다.

3개월 전만 해도 신문팔이로 하루 3만5천~4만5천루피아 (약 6천5백~8천5백원) 를 집에 가져갈 수 있었으나 지금은 2만~2만5천루피아 정도로 수입이 줄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하루를 영 공치는 날이 올지도 몰라요. 어서 옛날로 돌아가야 할텐데…. ”

지난 20일 오전1시 증권거래소 건물내 한식집에서 만난 피터 게로 콤파스지 경제부장도 어두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광고가 반으로 줄었다.

아직 해고는 없지만 조만간 월급이 줄 가능성이 크다” 고 전했다.

게로 부장은 한국 신문들도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우리도 한국과 똑같은 입장” 이라며 공감을 표시했다.

이보다 하루 전인 19일 중앙일보 취재팀과 만난 수잔토 푸조마르토노 자카르타 포스트 편집국장은 “상황이 좋지 않으나 앞으로가 더 큰일”

이라고 걱정했다.

포스트지가 22일 조사.보도한 바에 따르면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발행되는 언론매체는 모두 2백89가지로 종사원은 모두 4천5백여명. 이중 자카르타에만 일간지 20개, 주간지 24개, 잡지 30개가 몰려 있다.

이 가운데 환란 (換亂) 으로부터 자유로운 매체는 단 한 곳도 없다.

우선 광고가 40~50%씩 줄었다.

더구나 앞으로도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광고협회는 올 광고물량이 지난해 (4조9천6백억루피아) 보다 30% 가량 줄 것으로 내다봤다.

용짓값 부담도 심각한 문제. 환란이 닥치기 전인 지난해 7월 환율이 달러당 2천4백60루피아 선으로 안정돼 있을 때 ㎏당 1천5백30루피아였던 용짓값이 지난해 12월 (달러당 6천25루피아) 엔 3천5백45루피아로 치솟았다.

매일 24면씩 50만부를 발행하는 콤파스지의 경우 환율이 7천루피아 대를 넘어서면서 매월 1백20억루피아 이상의 추가 부담이 생겼다.

존폐의 기로에 선 신문.잡지들은 피나는 자구노력에 들어갔다.

콤파스는 지난주 지면을 16면으로 줄였다.

판매 부수가 27%나 줄고 광고도 40%나 깎인 주간지 페미나도 면수를 2백50쪽에서 1백30쪽으로 절반 가까이 줄였다.

20면을 발행했던 리퍼블리카지도 4면을 줄이고 컬러면도 축소했다.

테르비트.시니르 파기.자와 포스.베리타 부아나 등 신문은 아예 타블로이드판으로 바꿨다.

사내 경비도 바짝 죄고 있다.

포스트지는 전기.전화료를 줄였고 부서에 비치돼 있던 커피대도 없애버렸다.

심지어 구내식당 테이블 위에서 냅킨과 칠리소스도 치워버렸다.

리퍼블리카는 기자들의 휴대폰 사용을 중지시켰으며 한때 '취재경비 무제한지급' 으로 유명했던 마트라도 취재경비를 50%나 줄인다고 발표했다.

정간과 해고바람도 세차다.

미디어 인도네시아는 비편집국 직원 1백명을 해고했고 잡지인 시나르는 4월까지 정간한다고 발표했다.

32면의 화려한 지면으로 유명했던 라켓지는 지난달 이미 정간했다.

레오 바투바라 인도네시아 발행인협회 사무총장은 22일 자카르타 포스트지와 가진 회견에서 “어려움이 계속될 경우 총 2백89매체 가운데 70% 가량 문을 닫게 될 것” 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이럴 때 일수록 질 경쟁을 통해 고급 독자에게 다가가야 한다” 고 강조했다.

그래야 가격이 올라도 판매부수가 줄지 않고 결국 광고도 안정적으로 제공된다는 얘기다.

자카르타 = 진세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