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외펀드 손실 전면조사…換亂으로 상환액 2배 눈덩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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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금융기관들이 역외 (域外) 펀드를 운영하면서 외국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한 대출금 상환여부를 둘러싼 분쟁이 법정공방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감독당국이 역외펀드의 운영실태에 대한 전면 조사에 나섰다.

13일 증권.금융계에 따르면 은행감독원과 증권감독원 등 감독기관들은 현재 은행.종금.투신.증권사들이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운영하고 있는 역외펀드의 손실규모와 금융파생상품과의 연계투자 여부.지급보증실태 등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 작업을 벌이고 있다.

증감원의 경우 최근 증권사와 투신사의 역외펀드에 대한 조사에 들어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는데, 차입금 대부분이 부외 (簿外) 부채로 숨겨져 있어 정확한 실태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증감원 관계자는 "지난 97년초 J P 모건 등 미국계 은행들이 말레이시아에 역외펀드를 세운 SK증권.한남투신증권 등 국내 5~6개 증권.투신사에 대해 대출을 해주는 조건으로 금융파생상품을 집중적으로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펀드당 차입규모는 5천만달러며 대부분 환율변동에 따른 헤지 차원에서 일본 엔화와 태국 바트화를 섞어 운용하는 JP 모건의 금융파생상품을 사들였으나 바트화 폭락사태로 상환액이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국내 금융기관들의 차입금은 대부분 이달과 다음달에 걸쳐 만기도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감원 조사 결과 27개 증권사들이 모두 69개의 역외펀드를 설립.운용하고 있으며 투신사들도 사당 2~3개씩 역외펀드를 두고 있다.

지난해 12월말 현재 총 투자규모는 9억9천6백만달러, 차입금은 9억3백만달러에 달하나 증권당국 보고대상에서 제외된 지분 10% 미만의 펀드나 자 (子) 펀드를 감안하면 차입금 규모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한편 SK증권은 지난 11일 법원으로부터 채무이행금지 가처분 결정을 받아낸데 이어 13일 JP 모건의 자회사인 모건 개런티와 보람은행을 상대로 출자의무 부존재 확인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SK증권은 소장에서 "모건 개런티가 SK증권 등 한국 금융회사를 상대로 체결한 파생금융상품 판매계약은 거래에 따른 위험을 일방적으로 투자자에게 전가하는 사기에 가까운 계약이며 충분한 고지의무를 위반한 만큼 손실은 모건 개런티가 져야 한다" 며 "이 계약에 보증을 선 보람은행도 3천억원에 이르는 금액을 지불할 의무가 없다" 고 주장했다.

SK증권 이외에 한남투신증권 등도 법정소송을 준비하고 있어 금융파생상품을 둘러싸고 무더기 송사사태가 벌어질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월스트리트 저널을 비롯한 미국 언론들은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서명수·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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