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구조개선 지침' 의미와 파장…빚경영 봉쇄·공정한 기준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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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재무구조 개선협정의 취지는 한마디로 기업의 차입경영 체질을 강제로라도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또 은행돈을 쓰려면 '시키는대로' 구조조정을 이행하라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이는 원래 없었던 것을 새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이미 은행감독원의 감독 규정에 '주거래은행이 주거래 계열의 재무구조 개선을 지도할 수 있다' 는 조항이 있다.

정부.은감원.은행이 모두 규정대로만 했다면 방만한 그룹경영을 통제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동안 금융자율화가 온전치 않은데다 은행이 기업에 끌려다니는 풍토에서 이 조항은 거의 사문화돼 왔다.

엊그제만 해도 정부가 나서서 부실기업에 돈을 대주라고 은행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은행이 규정을 지킬 여건이 조성돼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당선자측이 재벌의 구조조정을 독려하기 위한 정책수단으로 새로 들고 나온 것이다.

이번 협정이 종전의 규정과 다른 점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은행이 강력한 제재를 취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은행이 이행촉구 서한을 보내면 기업은 사유서를 내야 한다.

이것이 미진하면 신규대출을 줄이거나 끊을 수 있고 극단적으로는 금융봉쇄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말 안듣는 재벌에 대해선 은행이 본때를 보일 수도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재무구조 개선협정은 형식상으론 은행과 재벌간의 '신사협정' 이지만 내용은 거의 일방적이다.

이 때문에 재벌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상호지급보증 해소 못지않은 메가톤급 조치로 느껴질 수도 있다.

앞으로 은행권이 해야 할 일은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같은 잣대' 를 마련하는 것이다.

한편 금융계 일각에서는 은행이 관련 협정을 문자 그대로 시행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나오고 있다.

기업들은 시중은행의 지분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은행장 인선에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또 거액 기업예금을 유치해야 할 은행들이 안면을 바꾸고 몰아붙이기도 불편할 것이다.

이밖에 일부 재벌은 당장 긴급구제금융이 필요한 판에 이같은 협정에 걸려 쓰러질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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