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수하르토]언론도 하야시위 동조…경제 실정·흉작겹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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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수하르토 왕국은 무너질 것인가.

지난 32년동안 절대 군주로 군림해온 수하르토가 최근 경제위기와 사회불안으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다음달 10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총체적 위기를 종합 점검해 본다.

외신들이 전하는 12일 오전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시내 풍경. 시내 외곽에는 3만5천명의 군.경찰 병력이 주둔, 시위대를 향한 출동명령만 기다리고 있다.

5백여명의 경찰병력은 자동소총과 함께 중무장한 복장으로 시내 중심가를 순찰한다.

하루 전인 11일 '수하르토 하야' 를 외친 시위대 2백여명을 현장에서 연행, 무차별 구타를 한 직후여서 경찰의 눈에는 살기가 번득인다.

과격 시위대에 대해선 발포명령까지 내려진 상황이다.

11일 오전. 수하르토 대통령은 “이번 경제위기는 루피아화 가치를 파괴하고 국가전복을 노리는 불순분자의 소행이 분명하며 이에 강경 대응하겠다” 는 엄중한 경고와 함께 하야 요구를 일축했다.

그러나 지난 32년 동안 숱한 정치적 위기를 특유의 용인술과 통치술로 극복해온 수하르토 대통령이지만 이번만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선 위기의 출발점이 과거와 다르다.

루피아화의 통화가치는 지난해 7월 이후 80%나 떨어진 상태다.

1월14일 IMF와의 구제금융협상 타결 이후에도 루피아화 하락은 좀처럼 멈추지 않고 있다.

생필품 부족과 물가 폭등이 뒤따랐다.

식량 수입을 독점하는 정부조달기관 불록 (Bulog) 의 재고는 3월말로 바닥이 날 상황이다.

이에 따라 올해 식량부족분만 무려 5백만t에 이를 전망이고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엘니뇨 현상 때문에 최악의 흉작까지 겹쳐 식량난은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지난 1월8일 자바섬에서 시작된 주민들의 시위는 수도 자카르타는 물론 전국적으로 수만여명이 참여하는 등 확산일로에 있다.

그동안 침묵을 지켜온 언론도 시위대에 동조하고 있다.

지난주 인도네시아 유력지인 자카르타 포스트지는 사설을 통해 “족벌경영으로 오늘의 경제위기를 가져온 수하르토 대통령은 즉시 하야하라” 고 촉구했다.

야당 지도자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역시 공격을 강화하면서 “수하르토 대통령은 3백억달러에 이르는 족벌의 재산을 모두 내놓고 하야하라” 고 촉구하고 있다.

정치적 안정도 위협받고 있다.

군부는 골카르당이 지명한 2명의 차기 부통령 후보인 하비비와 하르모코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앞으로 군부의 반발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물론 정권을 지탱하는 군 핵심부는 수하르토 대통령의 직계로 포진돼 있어 당분간 쿠데타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수하르토의 셋째 사위인 프라포 장군이 소요.폭동 진압을 책임진 특전사령관을 맡고 있고 자카르타 지역관구의 장군들도 대통령의 직계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군부의 뒷받침에도 불구하고 수하르토의 위기는 쉽사리 극복되지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수하르토가 추구하는 경제개혁이 대중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고 8백억~1천2백억달러에 이르는 화교 기업들의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 되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11일부터 자국 통화가치 보호를 위해 실시한 고정환율제가 실패로 끝날 경우 민간부문의 모라토리엄이 선언될 수밖에 없어 인도네시아는 총체적 위기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최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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