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IMF시대 회사지키기…'신 구사대'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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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주가와 원화가치 폭락으로 국내 기업의 평가가치가 땅에 떨어진데다 이를 노린 해외 '기업사냥꾼' 들의 움직임마저 심상찮게 돌아가자 자기회사 주식을 사들여 애사심을 발휘하려는 직장인들이 크게 늘고 있다.

우호적 지분을 늘려 경영권 안정을 도모하고 주가를 올려 기업이미지를 제고하자는 경영층의 방침에 부응하겠다는 뜻이다.

이미 지난 10월부터 외부의 경영권 도전에 불안을 느낀 상장사 오너들이 법인 차원에서 자사주 매입에 열을 올려왔다.

하지만 극도의 자금경색이 두달째 지속되면서 재원마련이 여의치 않게 되자 이제 근로자들까지 소매를 걷고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연말 카드대금 막기도 어려운 직장인들이 얄팍한 보너스 봉투를 털어가며 자기회사 주식을 사들이는가 하면, 경영진과 사사건건 맞서온 노조가 '구사대' (救社隊) 로 일변해 조직적인 자사주 매입운동을 벌이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종합주가지수가 마침내 400선 아래로 추락한 이달 초부터 일부 대형 제조.건설.운수업체를 중심으로 일기 시작한 이러한 움직임은 최근 들어 내로라 하는 우량 은행에까지 번지는 등 업종을 불문하고 확산될 조짐이다.

신한은행 노조는 내년초 받게 될 연월차수당과 소득공제금액 등을 모두 자기은행 주식 사는데 쓰자는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고 28일 밝혔다.

노조측은 "은행 임직원 4천6백여명의 동참을 유도하고 지분의 5% 확보를 목표로 삼고 있다" 고 밝혔다.

이에 앞서 한진.금호.대림 등 중견 재벌그룹의 주력 계열사들도 조직적인 자사주 매입운동을 벌이고 있다.

처음 자사주 매입 열풍에 불을 댕긴 대한항공의 경우 이달초 노사합의로 전직원 상여금 1백%를 자사주 매입에 쓰기로 한 바 있다.

한진건설.동양화재 등 한진 주력계열사 종업원들도 같은 목적으로 연말 상여금을 회사에 반납했다.

특히 대한항공의 경우 주가급락에다 원화가치 폭락까지 겹쳐 상장주식 시가총액이 보잉 747기 두대 값도 안되는 2억4천만달러까지 떨어진데 따른 위기감 때문에 노조는 이러한 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일 방침이다.

현재 국내주식의 시가총액은 불과 반년동안 절반인 60조원 대로 떨어졌고 환율폭등까지 가세해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 (GE) 일개 기업가치의 5분의1도 안되는 4백억달러에 불과한 형편이다.

이밖에 금호건설.금호타이어와 대림산업.서울증권 등도 자사주 사기운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IMF 한파에 꽁꽁 얼어붙은 주식시장에서 이처럼 종업원들이 용감하게 자사주 투자에 뛰어드는 분위기는 물론 '회사살리기' 명분에다 '+α' 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증권거래소 관계자는 "현재 주가는 11년만에 최저수준이며 도산우려가 작은 대기업 주식의 경우 장차 주가가 회복되면 효자노릇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은근히 작용한다고 본다" 고 말했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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