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월 스트리트저널]미국 경기호황속 감원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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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 기업들이 최근 대량 감원 계획을 잇따라 발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번주만 해도 세계최대의 필름 제조업체인 이스트만 코닥이 전 세계에서 고용한 전체 종업원중 10%가 넘는 1만명을 감원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전자부품업체 케메트, 컨설팅업체 웨이스트 매니지먼트 등 다른 대기업들도 대량 감원을 준비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그레이 앤드 크리스마스사의 조사에 따르면 올들어 미 기업들이 발표한 10대 감원계획 가운데 8건이 지난 7월 이후 실시되는 등 올 하반기 들어 몸집 줄이기에 나서는 기업들이 부쩍 늘고 있다.

10대 감원계획에 포함된 6만5천7백명중 하반기에 실시된 8건에 88%의 인력이 집중돼 있어 기업들의 감원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는 시점에서 대량 감원이 단행되는 이유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먼저 국제화.개방화 물결에 맞서 기업 체질을 강화하려면 지금보다 더욱 과감한 비용 절감이 필요하다는 주주들의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90년대 들어 다른 업종보다 인력 감축을 소홀히 해 왔던 섬유.의류.제지업종의 감원이 그런 사례다.

지난 8월 4천8백명의 감원을 단행한 섬유업체 프루트 오브 더 룸은 조만간 2천9백명의 인력을 추가로 줄일 계획이며 청바지업체 리바이스도 6천4백명을 감원할 계획이다.

또 대형 제지업체인 인터내셔널 페이퍼는 최근 주주들에게 내년중 9천명의 인력을 감축할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하는 등 많은 제지업체들이 조만간 감원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비해 최근 몇 년간 세계화 작업을 활발하게 벌였던 컴퓨터.전자.철강 업체들의 경우 기업 체질 강화를 위한 감원 작업을 이미 끝냈거나 현재 추진중인 감원규모도 다른 업종에 비해 비교적 적은 것으로 전해진다.

90년이후 대규모 감원 작업에 착수했던 철강업체 USX는 최근 듀크 대학의 여론조사팀이 대기업을 상대로 실시한 중장기 사업계획조사에서 향후 2~3년간 추가 감원 계획이 없다고 발표했다.

동남아 국가들의 금융위기에 따른 미 기업들의 상대적 수출경쟁력 약화와 함께 미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통신.금융분야 기업들의 활발한 인수.합병 등도 대량 감원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아시아국가들과 경쟁관계에 있는 제조업체들의 경우 앞으로 가격경쟁력이 약화될 경우에 대비, 인원 절감으로 맞설 수 밖에 없다는 의견이 강해지고 있어 호황 속의 감원 바람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컨설팅업체에 근무하는 한 경제학자는 "미국 경제가 경기순환 사이클로 설명할 수 없는 초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최근 기업들의 대량 감원 역시 과거의 논리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독특한 현상" 이라며 "그러나 이같은 원가절감 노력을 통해 미 기업들의 경쟁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 분명하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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