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깊은 슬픔''꽃을 든 남자' 멜로물에 액션 접목 부조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멜로드라마를 만드는 감독들에게 가장 고민스러운 일은 가장 고전적인 영화장르를 현대의 관객 취향에 맞게 변주하는 문제일 것이다.

할리우드의 멜로드라마는 스타들이 등장하는 낭만적인 사랑과 해피엔딩의 틀을 따랐고, 프랑스 영화들은 사랑이란 감정이 초래하는 복잡한 내면을 쫓아가는 철학적인 깊이로 지적인 관객에게 어필해왔다.

우리 영화계에는 슬픈 멜로드라마가 많은 편이었는데 최근에는 멜로드라마의 틀에 '볼거리' 로서의 액션을 가미하는 시도들이 늘어나고 있다.

15일 개봉하는 곽지균 감독의 '깊은 슬픔' 과 지난 8일 개봉한 황인뢰 감독의 '꽃을 든 남자' 도 그런 경우. '깊은 슬픔' 은 멜로영화를 많이 만들어온 중견감독의 작품이고, '꽃을 든 남자' 는 TV드라마로 성공한 PD출신 감독의 데뷔작이지만 두 작품은 "관객들이 영화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를 한번 생각해보게 만든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공교롭게도 남자주인공이 똑같이 김승우인데 영화 속에서 김승우가 그려지는 모습도 비슷하다.

'깊은 슬픔' 은 슬픈 사랑의 삼각관계를, '꽃을 든 남자' 는 낭만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지만 그 주인공역을 맡은 김승우는 두 영화 모두에서 악당 혹은 조직폭력배에게 쫓기고, 주기적으로 액션전문배우 못지 않은 액션연기를 해내야 했다.

신경숙의 소설을 각색한 곽지균 감독은 영화가 은서 (강수연) 와 완 (김승우) , 현세 (황인성) 라는 세 인물의 이름과 고향친구 간의 삼각관계라는 설정만을 따왔다고 해도 좋을 만큼 원작을 많이 바꾸었다.

특히 평범한 직장인인 완은 불행한 가족사 때문에 고향을 떠나 조직폭력배의 세계에 몸담게 되는 인물로 바뀌었다.

조직폭력배의 여자두목과 결혼한 그가 등장하는 장면은 당연히 폭력적인 액션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주차장과 나이트클럽에서의 격투등 액션영화의 상투적인 장면들이 삽입되었다.

이에 대해 곽 감독은 "원작소설 처럼 평범한 세 인물의 내면풍경 만으로는 너무 단조로워서 영화로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영화와 문학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극적인 전개과정에 에너지와 움직임을 많이 주기 위해서 완의 인물설정을 바꾸었다" 고 말했다.

방송스크럽터인 은서도 바이얼니스트로 바뀌었고, 배종옥을 완과 결혼하는 조직폭력배 여두목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도 시사회 반응에서 당혹감을 느꼈음을 인정한다.

슬픈 멜로드라마를 기대했던 관객들이 손톱을 빼려는 장면이나 폭력 장면 등에서 놀라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나도 액션영화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액션영화에 실제 그런 장면들이 많다는 것을 몰랐다.

암시적으로 처리하려한 고문장면이 관객들에게 그렇게까지 끔찍하게 받아들일 것이라 미처 생각못해 당황했다" 고 말했다.

주찬옥 원안의 '꽃을 든 남자' 역시 두 남녀의 감정의 흐름을 쫓아가기 보다는 볼거리에 더 치중한다.

시나리오를 고쳐내라는 영화사 사장 부하들에게 쫓기는 시나리오 작가 (김승우)가 부산으로 도망쳐 나이트클럽에 위장취업한다.

거기서 댄서 (심혜진) 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신데렐라같은 이야기지만 장면의 상당부분은 나이트클럽 무희들의 선정적인 춤과 클럽에서 싸우는 조직폭력배들의 액션씬, 그리고 악당과 주인공 간의 추격전이 차지한다.

문제는 관객들에게 어필하겠다는 감독들의 의도와는 달리 이같은 장면들이 서로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한 채 떠돌고 있다는 점이다.

차라리 남녀주인공들의 심리적인 갈등과 감정을 쫓아갔더라면 훨씬 공감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이 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