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빅2 생사 기로 … 날개 단 현대·기아차 주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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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현대자동차가 최고의 기회를 맞았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의 최근 보도 내용이다. 31일 증시에선 현대자동차는 물론 기아자동차까지 이 같은 분석에 힘입어 강세를 보였다.

현대자동차는 전날보다 4.72%, 기아자동차는 6%가량 올랐다. 이날 코스피지수 상승률(0.73%)을 압도하는 오름세다. 전날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의 파산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주가가 급락하던 것과는 상반된 양상이다. 오히려 두 회사의 빈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강하게 작용했다.

GM과 크라이슬러의 위기는 국내 자동차 업체들의 미국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해석되고 있다. 미 정부는 GM에 대해선 60일, 크라이슬러에는 30일간의 자구계획안을 새로 마련할 시간을 줬다. 이런 상태에선 미국 소비자들이 두 회사 차를 마음 놓고 선택하진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차 구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애프터서비스(AS)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미 정부도 이 점을 우려해 정부가 자금을 투입해 두 회사의 AS를 보증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얼마나 실효가 있을지 의문이다.


두 회사 중 하나라도 퇴출된다면 국내 업체와 일본·유럽 자동차 업체에는 엄청난 기회가 된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전문가들은 GM의 파산 가능성은 낮게 보지만 크라이슬러의 퇴출 가능성에는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다. 미 정부가 두 회사를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달랐다는 점이 근거다. 자구계획 유예 기한의 차이가 대표적인 사례다. 또 GM의 릭 왜고너 회장을 퇴진시킨 반면 크라이슬러 경영진은 아무도 물러나지 않았다.

NH투자증권 안상준 애널리스트는 “미 정부가 크라이슬러를 살릴 생각이 강했다면 GM에 한 것과 마찬가지로 경영진 사퇴를 요구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어차피 문 닫을 회사인데, 굳이 경영진을 미리 내보낼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국내 전문가들은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크라이슬러의 빈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크라이슬러는 지난해 미 자동차 시장에서 10.5%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또 설사 GM과 크라이슬러가 미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 해도 회생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이 기간이 국내 자동차 업체들에는 미국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하나대투증권 이상현 연구원은 “미국 업체들이 정부 지원과 자구노력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한다 해도 최소 2~3년이 소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구노력이 설비 감축과 연결될 가능성이 높은 점도 국내 업체에 호재다. 현재 미 정부는 GM의 부실 부문을 털어내 매각하거나 수익성 없는 설비를 폐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증권 김성범 연구위원은 “향후 경기가 나아질 경우 설비를 온전하게 보존한 업체들은 경기 회복의 수혜를 크게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GM과 크라이슬러의 파산 가능성이 이미 증시에 노출된 악재라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증권 황금단 애널리스트는 “빅2의 파산 가능성보다는 8일에 시작될 국내외 기업들의 1분기 실적 발표가 증시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GM과 크라이슬러 파산 가능성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향후 증시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또 미 정부가 자국 기업을 살리기 위해 보호무역 장벽을 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악재다.

이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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