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솥발의 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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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거대한 제국일수록 유지에 비용이 많이 든다.

먼 지방에까지 행정을 펼쳐야 하고 긴 국경선을 방어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국 중심부의 생산기술.행정기술.전쟁기술이 주변부보다 뛰어나면 이 비용을 감당하고 제국을 유지할 수 있지만 중심부와 주변부의 기술격차가 줄어들어 이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 제국은 무너지고 만다.

옥스퍼드대마크 엘빈 교수는 이런 이론으로 중국사의 치란 (治亂) 반복을 설명한다.

철기문명의 보급이 진한 (秦漢) 제국을 일으켰고, 봉건제도의 완성이 수당 (隋唐) 제국의 기초가 됐고, 도작 (稻作) 농업의 발달이 송 (宋) 나라 천하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 그리고 이 기술들이 중심부의 독점을 벗어나 주변부로 전파됨에 따라 제국은 와해됐다가 다시 획기적인 기술발달이 있을 때 제국이 다시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삼국지' 의 시대는 분열의 시대였다.

184년 황건적의 난 진압을 위해 지방에 분산시킨 병권을 한 (漢) 나라 조정이 다시는 통제하지 못하게 되면서 제국은 실질적으로 와해됐다.

220년대에 위 (魏) - 촉한 (蜀漢) - 오 (吳) 의 세 나라가 일어선 것은 지방세력들 사이의 이합집산 결과였다.

엘빈의 관점으로 보자면 통일의 실력을 키워줄만한 획기적 기술발전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천하를 나눠 가졌다는 세 나라의 내부구조도 중앙집권성이 약한 세력연합의 성격이었으리라고 추정된다.

유비 (劉備) 의 의동생 관우 (關羽)가 오랫동안 형주 (荊州)에서 반 독립상태를 유지한 일이나 위나라 대장 사마의 (司馬懿) 의 자손들이 나라를 빼앗을만한 실력을 가졌던 사실을 보면 그런 추정이 합당하기도 하다.

유비가 삼고초려 끝에 제갈량 (諸葛亮) 을 만났을 때 제갈량은 제3세력의 형성을 권한다.

북쪽의 조 (曹) 씨와 남쪽의 손 (孫) 씨 두 세력의 빈틈에 근거를 만들어 솥발 (鼎足) 의 형세를 이루자는 것이었다.

한나라를 핍박한 조씨에게 반대하고 지방의 실력자 손씨에게 불복하는 반조비손 (反曹非孫) 세력을 한나라 후예의 명분으로 규합하는 전략이었다.

통일의 확고한 실력 근거가 없을 때 이합집산의 결과가 솥발의 형세로 나타나기 쉽다는 사실은 대선정국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확고한 지도력을 못 가지는 화 (禍) 와 민주주의를 본격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복 (福) 이 우리 국민 앞에 함께 닥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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