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소아 비만과의 전쟁, 더 철저히 대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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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올 새 학기부터 각급 학교 학생들에게 과일과 야채를 무료로 나눠주기 시작했다. 영국·프랑스·스웨덴 등 유럽 주요국은 청소년들의 TV 시청 시간대에 패스트푸드나 탄산음료 등의 광고를 제한한다. 미국과 호주에선 학교 내 식당과 매점에서 고열량·저영양 식품의 판매가 금지돼 있다. 지구촌 각국이 소아비만과 한바탕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소아비만은 성인비만으로 이어질 뿐 아니라 고혈압·당뇨 등 성인병 발생 위험을 크게 높인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인구 중 최소 10억 명이 과체중 또는 비만이며, 비만 인구의 20%가량이 어린이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2~18세 중 비만 비율이 1997년 5.8%에서 2005년 9.7%로 두 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서울시교육청 조사 결과 지난해 서울 시내 초·중·고생의 비만율은 13.7%나 됐다. 성장기에 인스턴트 식품을 많이 먹는 식습관 탓이 크다. 뒤늦은 감이 있으나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22일 시행된 ‘어린이 식생활 안전관리 특별법’이 그 신호탄이다. 다음 달 말께 관련 고시가 마련되는 대로 교내 매점에서 열량만 높고 영양가는 없는 이른바 ‘정크 푸드’의 판매가 금지된다. 적잖은 학생이 날마다 매점에서 산 과자나 컵라면 따위로 끼니를 때우거나 군것질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 조치만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의 경우 교내에서 튀긴 음식과 탄산음료 등의 판매를 제한하는 ‘트림 앤 핏(Trim and Fit)’ 프로그램을 실시한 후 소아비만이 10년 새 4%포인트 감소하는 성과를 올렸다.

법 시행으로 첫 단추는 끼웠지만 향후 추진 과정에서 보완해야 할 점이 한둘이 아니다. 당장 살펴야 할 곳이 학교 주변이다. 정크 푸드를 파는 영세 분식점·문방구 등이 밀집해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정부는 자발적으로 판매를 자제하는 곳엔 인센티브를 주고, 나머지 업소는 시·군·구별로 소비자 감시원을 시켜 지속적으로 단속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법적 강제성도 없는 데다 공무원도 아닌 민간인의 말이 업자들에게 얼마나 먹힐지 의문이다. 학교 급식과의 연계 조치도 미흡하다. 낮은 단가에 맞추려다 보니 급식 식재료 중엔 반 조리 튀김이나 인스턴트 식품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 이 부분이 함께 개선되지 않는다면 반쪽짜리 대책에 불과할 뿐이다. 또한 업계 반발로 일정이 연기된 정크 푸드 광고제한 규정도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