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4강 정상외교와 한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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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장쩌민 (江澤民) 중국국가주석의 미국방문과 클린턴대통령의 정상회담, 그리고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 일본총리와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시베리아 정상회담이 국제적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열렸다.

이어 옐친대통령은 江주석의 4월방문에 대한 답방으로 오는 9일 중국을 방문, 江주석.리펑 (李鵬) 총리를 비롯한 많은 요인을 만나 양국협력을 더욱 다질 것이라고 한다.

한편 리펑총리는 옐친방문 직후 일본방문 길에 올라 일본측과 '미.일방위협력지침' 및 대만문제 등에 대한 중국입장을 분명히 하고, 센카쿠 (尖閣) 열도 등 양국간 영토현안도 협의할 것이라 한다.

내년에는 미국이 오래 준비한 클린턴대통령의 중국방문이 실천돼 장차의 미.중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매우 궁금하다.

그리고 옐친의 일본방문도 내년 5월로 예정돼 있다.

이와 같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4강 정상 방문외교 러시는 옛소련체제 붕괴 이후 새롭게 모색되고 있는 4강관계와 그에 따라 재편될 동북아 국제질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세기적 의미를 가진 역사적 사건들이다.

현재 동북아지역에서의 중.미.일.러 4강관계에는 당장 폭발할 위험한 문제는 없으나 중국의 '초강대국화' 를 경계하는, 소위 '중국경계론' 과 소련 붕괴로 세계적 군사패권국이 된 미국의 지나친 개입과 세력팽창에 대한 경계심으로 해 특히 최근에 와 미.중관계와 미.일관계가 순탄치 않게 되면서 불확실성이 증대된 불안한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는 유동적 상태에 있다.

구체적으로 소련체제 붕괴 이후 유일한 군사패권국이 된 미국은 현재 '신고립주의' 로 돌아가기를 포기하고 냉전승리로 얻은 기회와 힘을 적극 활용해 미국의 군사지배권과 경제이익이 위협받지 않는 신국제질서를 수립하려는 원대한 야심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냉전후기 정책을 미국은 '참여와 확산의 국가안보전략' 이라고 명명했다.

클린턴대통령은 이런 구상에 따라 지난 95년2월 미국의 적극적 동북아 개입정책을 '동아시아.태평양지역 전략지침' 으로 발표하고 약 10만명 규모의 주일.주한 미군을 계속 주둔시킬 것을 선언하고 나왔다.

이 정책과 관련해 일본과의 군사협력 강화를 위한 '미.일 방위협력지침' 을 지난 9월에 발표한 것이 미.일 양국의 대 (對) 중국관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그 내용은 양국이 아무리 부정해도 북한과 중국을 실질적 혹은 가상 적국으로 설정한 군사적 봉쇄정책적 성격을 강하게 가진 것이기 때문에 중국이 크게 문제삼고 있다.

이런 중에 중국과 러시아가 오랜 불편관계를 청산하고 96년4월 베이징 (北京) 옐친.江정상회담을 통해 어느 일국의 패권 추구와 독점정책을 반대하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 임을 선언하고, 특히 군사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냉전후기의 이러한 국제정세 변화에 맞춰 4강의 정상들이 각각 자국의 이익과 안전 최대화를 위해 방문외교 러시를 보이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그리고 이런 외교와 협상은 불필요한 갈등과 오해를 많이 해소해 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한국과 북한의 정상들은 바쁘게 돌아가는 정상간의 방문외교에서 제외돼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이 중대한 시기에 북한은 식량구걸 외교에 정신없고, 한국의 누구도 대통령선거를 둘러싼 국내정쟁으로 4강간의 외교와 협상 의미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에 그치지 않고 남북한은 남북관계를 계속 무모한 대결로 몰아 4강간 외교에 짐이 되고 있다.

북한체제의 위험성과 그 체제가 붕괴되거나 밖으로 폭발할 때 동북아 4강관계를 해칠 나쁜 영향을 경계해 4강의 외교가 한반도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맞고서도 한국정부는 곧 '북한이 붕괴' 할 것만 기다리고 있다.

중.러 양국은 북한관계 복원과 북한지원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사실을 굳이 외면하면서 말이다.

지금이라도 남북한 관계개선을 적극 추진하지 않으면 한민족만 낙오돼 '4강외교' 의 희생물이 다시 될지 모른다.

이호재 <고려대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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