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반지와 건축의 역학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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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디자인이란 시각에서 보면 규모가 더이상 커질 수 없는 곳에 건축이 서 있다.

반면 반지는 아무리 커지려고 해도 결코 손가락 굵기를 벗어날 수 없는 사이즈다.

'관계없음' 처럼 보이는 반지와 건축이 어색하게 만났다.

어색한 만남이 이상스럽게 몸을 간지럽히며 가만히 있는 의식을 뒤흔든다.

독일 쾰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이광선 (李광선.37) 씨가 국내에서 첫 개인전을 열면서 건축과 반지라는 색다른 조우 (遭遇) 를 시도했다.

(10월7일까지 크래프트 스페이스 목금토. 02 - 764 - 0700) . 원래 반지의 기원은 지금부터 약 5천년전인 고대 이집트의 제8왕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귀족계급에서 호신용 장신구의 하나로 만들어썼던데서 반지의 역사가 시작한다.

李씨의 반지는 '동그란 테와 그 위에 올라 앉아 있는 보석' 이란, 5천년동안 내려온 반지의 평범한 생각을 뒤엎는다.

지중해의 푸른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그림엽서에나 나올 듯한, 흰 담에 붉은 지붕을 인 집들이 반지 위에 앉아 있다.

원래는 호박이나 루비.사파이어가 앉아 있어야 할 자리다.

또 쾰른성당의 비쭉이 솟은 첨탑도 올려져 있다.

63빌딩이 강풍에 쏠린 듯이 비스듬히 옆으로 휜 모습도 있다.

직선과 사선 (斜線) , 그리고 약간의 곡선이 교차하면서 부드럽고 여성적인 반지의 인상을 기하학적인 조형물로 변형시키고 있다.

"건축의 매력을 작품에 끌어들이고 싶었다" 는 게 색다른 만남을 실현시킨 李씨의 말이다.

건축은 탄생 때부터 불가사의한 매력을 풍기며 인간의 시선과 의식을 끌어당겨왔다.

힘과 균형 그리고 비례. 기둥과 도리가 힘을 주고 받으며 균형을 이루고 비례에 의해 구성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건축은 그 자체로 완성된 조형미를 띤다.

李씨의 작업, 반지와 건축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상상력' 의 다리가 놓여있다.

저녁 햇살에 손등 위로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고대 신전의 박공 (공) 은 여인의 아름다움을 지켜주는 수호 정령 (精靈) 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해석보다 그녀의 작업에서 신선함이 엿볼 수 있는 부분은 조형성이란 뼈대를 먼저 세워놓고 그 다음에 실용에로 접근한 방법론에 있다.

사각형으로 삐죽 솟은 그녀의 반지를 시착 (試着) 했던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편하다" 며 높이에 대한 불안이 기우였음을 말하고 있다.

李씨는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독일에 건너가 포르츠하임대학과 쾰른예술대학에서 수학했다.

윤철규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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