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중생들도 濟度하소서…월산스님 圓寂에 붙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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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 뭐꼬 (是什磨) ."

한국 선림의 영양 (羚羊) 한 마리가 푸른 숲속 나뭇가지에 뿔을 걸고 종적을 감췄다.

발자취를 따라 그 영양을 쫓던 사냥개들과 사냥꾼들은 어찌할꼬. '시십마' 는 6일 원적 (圓寂) 한 경주 불국사 조실 월산 (月山) 노사가 일생동안 들었던 화두다.

그는 자아 발견과 자기 성찰을 촉구하는 이 화두를 만공 (滿空) 선사로부터 받아 참구, 견성의 문을 열었고 회적 (灰寂) 하는 날까지 잠시도 놓지 않았다.

월산은 그만큼 자기 성찰에 철저했다.

근대 한국불교 선종의 우뚝한 산맥인 경허 (鏡虛) - 만공 - 금오 (金烏) 로 이어진 선맥의 적손으로 평생을 참선정진에만 몰두해왔다.

부득이 한때 조계종 총무원장.원로회의 의장등 '중벼슬' 을 했고 90년대 들어 종정 물망에 오르기도 했지만 이 모두가 그의 본분사 (本分事) 는 아니었다.

그의 마음은 오직 경주 토함산 자락의 불국사 선방과 속리산 법주사.덕숭산 수덕사 선원을 오가며 유한자재했다.

수덕사가 본산인 경허 - 만공 법맥을 대표하는 덕숭문중 (德崇門中 : 일명 '月' 자 문중) 의 좌장이었던 그는 유와 무 양극을 모두 다 버린 절대 무의 중도 (中道) 불법을 자신의 '평상심' 으로 간직하며 살았다.

조선후기부터 계속돼온 한국 선문의 돈점 (頓漸) 논쟁이 최근 재연돼 합천 해인사와 순천 송광사가 각각 돈오돈수론과 돈오점수론으로 맞서자 그는 "아무려면 어떤가.

나한테 물으면 그런거 모른다고 할거야" 라고 했다.

시 (是) 와 비 (非) 를 가르는 분별심을 뛰어넘어 '한 소식' 한 존숙 (尊宿 : 선지식) 다운 태도였다.

산양의 일종인 영양은 잠을 잘 때 나뭇가지에 뿔을 걸고 자 맹수의 추적을 피한다고 한다.

80년 12.7 불교법난때 창피를 당하기도 했던 월산선사의 발걸음은 이제 영양의 발자국처럼 더이상 찾을 수 없게 됐다.

'무공덕의 공덕' 이라는 보살도의 무보상적 보시행을 상징하는 영양의 무종적을 살고 간 월산의 현재세 (現在世) 는 끝났다.

이제 빨리 지옥에 내려가 그 높으신 법력으로 그곳의 고통받는 중생들을 제도하소서!

이은윤 종교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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