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 한 분 답장은 못하지만 사랑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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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경북 군위군 군위읍 용대리 고 김수환 추기경의 옛집에도 빈소가 마련돼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군위=프리랜서 공정식]


그해 12월 김 추기경의 홈페이지(http://cardinalkim.catholic.or.kr)엔 ‘사랑의 편지’라는 게시판이 만들어졌다. 김 추기경은 “한 분 한 분에게 답을 쓰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여의치 못해 게시판을 통해 답신을 쓰게 됨을 용서하십시오. 저의 마음은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사랑합니다”라며 게시판을 열었다. 이후 그가 팔목 통증으로 컴퓨터를 이용하지 못하게 된 2000년 3월까지 ‘혜화동 할아버지’(김 추기경은 편지 끝에 꼭 ‘혜화동 할아버지가’라고 맺었다)는 신자·시민들이 보낸 편지에 300여 통의 답장을 썼다.

“글씨 색을 핑크색으로 골랐는데 초록색으로 나오니 알 수가 없구나. 율리아나가 초록 같은 젊은이기 때문일 거야. 컴맹이 아니라는 칭찬은 고맙지만 난 여전히 컴맹이야.” 1999년 1월 한 신자의 글에 김 추기경은 이렇게 답했다. “나 자신의 홈페이지도 잘 찾지 못하니, 말하자면 제 집도 금방 찾지 못하는 거야”라며 장난스럽게 푸념했다.

서툰 컴퓨터 실력에도 혜화동 할아버지는 성실한 인생 상담사였다. 답장마다 상대방의 세례명을 부르며 친근하게 다가갔다. 한 남편이 “아내가 성관계를 싫어해 거짓을 행하게 되고 육신과 탐욕의 욕구에 젖는다”고 고민하는 글을 보내왔다. 김 추기경은 “부인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라”며 “인간사에 있을 수 있는 굴절을 기도로 돕고 싶다”고 위로했다.

새로 태어난 딸의 세례명을 지어 달라는 부탁에 “10월 15일이 생일이니 그날이 축일인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를 따르면 좋겠다”며 이름을 지어줬다. 인터넷 동호회에서 개신교 신자들과 싸움이 벌어졌다는 청년의 글엔 “제발 그것이 미움으로까지 번지지 않기를 빈다”며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가 주님 말씀대로 형제로 사랑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답했다.

김 추기경은 외로웠고 사람들과 더 소통하기를 바랐다. ‘사랑하는 친구들에게’라는 제목의 글에선 “운전면허를 따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낯선 방문객에 시달려도 좋으니 (집무실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들락거릴 수 있었으면 한다”며 “이 늙은이가 미래 사회의 주역들에게 참삶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전해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보람된 봉사가 어디 있겠는가”라고 아쉬워했다.

‘사랑의 편지’는 2000년 3월 20일 김 추기경의 글로 끝을 맺었다. “그동안 여러분이 내게 준 사랑에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을 기도 속에 기억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가없는 사랑 속에 사십시오.”

김진경 기자 ,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김수환 추기경이 인터넷 통해 신도들과 나눈 사랑의 편지

▶ 새해엔 마하트마 간디가 찬양한 ‘미소’를 모든 이들과 나누며 살기를 노력해보세. (1998년 12월 30일)

▶ 오늘의 세상은 우리 영혼에 너무나 위험이 많아요. 하늘을 바라보며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기도 속에 살도록 함께 노력해요. (99년 1월 9일)

▶ 죽어가는 땅을 살리는 토양학을 전공한다니,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소중한 학문인 것 같습니다. (99년 1월 11일)

▶ 행복의 비결이 뭔지 아니?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 이웃을 사랑하는 거야. (99년 1월 11일)

▶ (나이가 들면서) 자꾸 잊어버려요. 할 수 없지요. 하느님은 이런 나를 여전히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니 말입니다. (99년 6월 14일)

▶ 개신교 신자들과 서로 형제로 사랑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이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수 없다. (99년 7월 4일)

▶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요. 그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참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겠지요. (99년 6월 14일)

▶ 우리 아픔, 슬픔, 기쁨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되자. 그러면 온 세계를 껴안을 만큼 우리 가슴이 커지고 하느님 나라가 거기 온단다. (99년 8월 11일)

▶ 여러분이 내게 준 사랑에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나를 위해 바쳐 준 기도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여러분을 기도 속에 기억할 것입니다. (2000년 3월 20일 ‘사랑의 편지’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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