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메랄드 궁전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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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금년 생일에 스물여섯처럼 보인 내가 내년 생일엔 사십대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뜻인가요?" "그렇지, 바로 그거야! 일년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실제의 인생이 더욱 젊어질 수도 있고 재수 없으면 어이 없을 정도로 늙어버릴 수도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생일이 될 때마다 지난 일년 동안의 자기 삶을 주변 사람들에게 평가받게 되는 거지. 그렇게 되면 누구나 일년 동안의 자기 삶을 소중하게 생각할 것이고,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함부로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무슨 궤변인가, 말을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입가로 웃음이 번져나왔다.

"하여튼 늘 생각하는게 너무 엉뚱해요. 만약 그런 식의 생일 축하 방법이 세상으로 퍼져나가면 생일 노이로제 때문에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 엄청 늘어날 거예요. 안 그렇겠어요?" "후후, 노이로제에 걸릴 짓을 안 하고 살자는 게 이런 축하 방식의 근본 취지야. 어쨌거나 해마다 한살 한살 정해진 나이를 먹는 걸 형식적으로 축하해 준다는 건 너무 단조롭잖아.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먹는 나이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 혹은 어떻게 살려고 하느냐, 그런 게 반영된 정신 연령을 축하해 주는 게 훨씬 중요할 수도 있다는 거야. 간단히 말해 인간은 자신의 정신적인 나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거지. 세상엔 말야, 십대 중에도 육십대처럼 노회한 사고를 지닌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육십대 중에도 십대처럼 맑고 깨끗한 정서를 지니고 있는 사람도 있어. 내면의 나이랄까. 아무튼 나는 그런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거야. 이해 돼?" 직선 도로를 달리며 다소 멋쩍은 표정으로 나는 재빨리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럼 자신의 실제 나이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나요?" "나?" 아차, 하는 표정으로 나는 한손을 핸들에서 떼고 이마를 짚었다.

"난 금년 생일엔 스물여섯이니까…… 오늘 받은 서른세 송이의 장미에서 일곱 송이를 뽑아낼 거예요. 그럼 됐죠? 그러니까 이제 실제 나이를 고백해 보세요. " "이것 참 야단났군. 내 실제 나이를 알면 하영이가 엄청 화를 낼 텐데…… 어쩌지?" "괜찮아요. 팔자라고 생각할 게요. " 피식 웃으며 그녀는 농스럽게 말했다.

"정말 미안한데…… 내 실제 나이는 열여덟이야. 열여덟에서 더이상 나이를 먹지 못하고 정신 연령이 멈춰 버린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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