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후지모리 출생지 시비 …집권 7년 최대 시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후지모리는 페루 태생인가, 아니면 일본산 (産) 이민자인가' .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이 연일 거듭되는 '출생지 시비' 로 집권 7년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4월 일본대사관저에서의 인질사태를 성공적으로 진압, 승승장구한지 불과 3개월여만에 인기 폭락이다.

국내 주요 인사에 대한 도청사건, 언론자유 탄압등 기존의 실정 (失政)에 덧붙여 더욱 불거지고 있는 '출생지 시비' 의 위력은 가위 메가톤급. 대통령 자격론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는 이 문제는 지난 26일 도아우그스토 베르가스 알자로마 추기경이 "후지모리 대통령의 세례기록이 교회의 승인없이 고쳐졌다" 며 후지모리가 페루태생이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 더욱 가열되고 있다.

페루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페루에서 태어나야 한다.

이에 앞서 주간지 카레타스는 후지모리의 부모가 지난 34년 페루입국 당시 2명의 자녀를 대동했다고 신고, 4남매중 둘째인 후지모리가 페루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후지모리는 27일 자신이 지난 38년 7월28일 페루 리마에서 태어났다며 보도를 즉각 부인하는 한편 이 잡지를 상대로 소송제기 검토등 반격에 나설 움직임이지만 '상대측' 에 추기경까지 가세하고 있는 터라 매우 껄끄러워하는 모습이다.

후지모리를 궁지에 몰고 있는 또 다른 사안은 도청문제. 지난 13일 페루의 채널2 텔레비전 방송이 "군 정보요원이 정치인.기업인.언론인등의 전화내용을 도청, 녹음했다" 고 폭로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에 후지모리는 이스라엘 출신인 채널2 방송 소유주의 귀화서류에 문제가 있다며 페루 시민권을 박탈하는등 즉각적인 보복조치를 취해 국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현재 수도 리마를 비롯한 전국에서는 "독재타도" "언론탄압중지" 를 외치는 반 후지모리 시위가 꼬리를 잇고 있는 중이다.

이런 와중에 일본대사관저에 인질로 붙잡혀 있다가 풀려난 프란시스코 투델라 외무장관등 3명의 각료가 정부의 조치에 불만을 품고 사직, 후지모리 정부의 위신을 더욱 실추시켰다.

또 엎친데 덮친격으로 이혼한 전처 수사나 히구치가 돌연 90년 선거때 빌려간돈 1백20만달러 (11억원) 를 돌려달라며 차용증서를 공개하고 나서 망신살이 뻗치고 있는 처지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후지모리는 집권 7년만에 가장 바닥인 지지율 19%를 기록, 그의 몰락이 현실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높게 하고 있다.

염태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