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은행의 영업赤字 심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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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돈장사에는 실패가 없다' 는 우리나라 경제인들 사이의 정설 (定說) 이 지금 거침없이 무너지고 있다.

95년 상반기에 이어 2년만인 올해 상반기에도 25개 일반은행이 합계 약 8백억원의 적자를 냈다.

만일 회계분식 없이 원칙대로 부실채권에 대한 대손상각충당금을 적립했다면 결손금액은 이보다 단위가 다르게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나라 은행이 대외공신력을 지킨다는 명분을 걸고 습관적으로 장부상 이익을 부풀리고 있다는 사실은 외국 분석가들이 더 잘 알고, 외국신문이 더 자주 커다랗게 보도하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은행사람들은 자기네 결손의 원인을 원금과 이자를 갚지 않는 대출거래선 기업의 경영실패탓으로 돌릴 것이다.

그러나 남의 탓을 하기 전에 은행은 그들이 떼인 돈이 누구의 돈인가를 먼저 똑똑히 가슴에 새겨야 한다.

그것은 예금자가 맡긴 돈이다.

떼일 곳에 은행돈을 대출한 것은 예금자의 입장에서는 전적으로 은행의 배임 (背任) 이요 태만이다.

우리나라 은행이 예금자로부터,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은행주식을 산 투자자로부터 분노를 사는 이유는 은행돈의 진짜 임자에 대한 신의를 저버린채 책임없는 영업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관치금융' 도 은행 자신이 이유로 내세우면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예금고객에 대한 철저한 책임감이 있다면 어떤 경우라도 철저한 '여신심사' 부터 통과한 후에 대출이 집행돼야 하는 것 아닌가.

은행들 가운데는 적지만 이익을 올리고 있는 은행도 없지 않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 그 예다.

이들 은행은 주목할만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소액금융 전문은행인 국민은행은 부지런하고 겸허한 영업태도와 위험분산 대출관행을 지키고 있다.

신한은행은 우리나라에서는 예외적으로 주인있는 은행으로 출발했고 주주의 이익과 예금자 이익을 강조하는 경영을 하고 있다.

은행 영업적자의 핵심 원죄는 은행을 주물러온 정부의 반 (反) 기업적 역사에 있다.

정부는 은행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를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의 모델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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