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방의회의 예산 불법전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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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인천시의회가 의원활동비를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3억6천9백만원의 예산을 전용하면서 이중 5천만원을 시장 활동비로 배정한 사실이 밝혀졌다.

현재까지의 검찰조사로는 시의회가 자신들의 불법행위에 발이 저려 시장에게도 선심을 쓴 것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시와 의회가 짜고 이같은 일을 벌였을 가능성이 크다.

시 집행부가 이 돈이 예산편성지침에도 없는 것임을 몰랐을리 없고, 의회의 위법행위에 재심을 요구하지도 않은채 이미 3천9백만원을 써버렸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의회가 예산을 전용했으니 고양이에 생선 맡긴 격이다.

집행부도 모른체하며 돈을 받아 썼으니 시민들이 시정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겠는가.

우리 지방자치의 수준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한심한 일이다.

지방의원들에게는 충분치는 않지만 매월 활동비가 지급되고 있고 각종 조사활동 등을 위해 사무처의 공동경비도 책정돼 있다.

그런데도 별도의 활동비를 불법조성한 것은 개인용도로 쓰기 위한 것이 아닌지 확실히 가리고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인천시의회의 사례는 의원들의 자질에 문제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의원들의 자질시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개선되기는커녕 이권개입과 금품수수 등이 끊이지 않는 등 정경유착비리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기업체를 가진 의원들이 의석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의원직을 방패막이와 이권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데 염증을 느낀 한 의원이 최근 사퇴하는 일까지 있었다.

주민과 시민단체의 의정활동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감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자질이 떨어지는 의원은 표로 심판함으로써 지방자치가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지방행정을 감시.견제하기 위한 활동에 부족함이 없도록 의원활동비 규모를 재검토하는 등 의회제도도 손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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