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위기를 사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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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경제는 어렵고 정치는 실종됐다.리더를 잃은 정부는 기능이 마비된 상태고 방향을 잃은 국민은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분명히 우리는 지금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오늘의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북한도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미국 합참의장은 한반도 안보가 25년 전보다 더 악화됐다고 경고했지만 언제 북한이 전쟁을 도발할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해결책을 말하는 사람은 많다.대통령은 무엇을 해야 하고,경제는 어떻게 뜯어 고쳐야 하며,북한은 이렇게 또는 저렇게 다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책을 말하기 전에 우선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있다.다름 아닌 우리들의 기본자세다.대통령이건 일반 시민이건 이처럼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리 모두가 지녀야 할 삶에 임하는 태도와 마음가짐부터 생각해 보아야 한다.왜냐하면 위기의식은 우리들의 마음을 흔들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파괴함으로써 우리들을 절망에 빠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정신의 위기는 객관적 위기보다 더욱 무서운 것이다.

상황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미래에 대한 희망과 현실에 대한 균형감각,그리고 조용한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선 우리는 자신이 평소 하는 일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위기는 흥분과 과장으로 극복되지 않는다.정상적인 상황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각자가 맡은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물론 세상이 평소와 같지 않은데 나만 평소와 같이 행동한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쉽지 않다.그러나 그렇게 해야 한다.정신적으로 흔들리지 말고 자신이 맡은 일을 충실하게 해나가는 방법이 위기를 이기는 길이다.

둘째로 작은 일,작은 기쁨,작은 차이들을 귀중하게 생각하는 태도를 지킬 필요가 있다.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위기가 발생했다고 작은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심리적 유혹에 빠져선 안된다.

위기의 역사 속에서도 사람은 숨을 쉬고,필요한 것을 먹고 마시고, 사랑을 나누고 삶을 살아가게 마련이다.큰 일이 났다고 해서 작은 일을 잊어버리면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된다.오히려 작은 일을 귀중히 여김으로써 큰 일을 할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생각과 말을 조심하고 작은 차이점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우리는 너무도 생각없이 언뜻 듣기 좋아보이는 말들을 하는 경우가 많다.예를 들면'돈 안드는 정치'를 말하는 사람들은 다시 한번 자신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정말로'돈 안드는 정치'가 가능하다고 믿는지 말이다.'돈이 적게 드는 정치'라면 말이 된다.실현 불가능한 것을 지향해야 한다고 떠드는 사람은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안보'를 부르짖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북한의 안보 위협은 말하면서도 실제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다.북한이 전쟁 도발을 해올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 뿐만 아니라 북한의 도발 동기를

극소화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위협을 말하는 사람은 매우 실질적인 대응책을 생각해야 한다.이런 면에서

우리는 지금 너무도 막연히 어떻게 되겠지 하는 무책임한 심리상태에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오늘의 일에 충실하고 작은 일들을 중요시하면서 동시에

멀리,길게,넓게 생각할줄 알아야 한다.

위기는 있다.위기는 역사의 끝,사회의 멸망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과거에도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고비들을 지내오면서 성공도 했고,실패도

했었다.중요한 것은 역사는 끊임없이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위기는 오히려 성공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안일한 낙관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퍼스펙티브'가 필요하다는 뜻이다.너무 가까이 보면

어지러움을 느끼게 된다.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시야를 넓힘으로써 진실에

더욱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변한다.변화는 고통스럽지만 새로운 것을 가능케

한다.어느새 한 정권이 가고,한 시대가 과거에 파묻히면서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맞게 될 것이다.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김경원〈사회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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