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상실' 내숭녀의 좌충우돌 사랑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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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는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임기응변의 거짓말을 시작한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기억을 잃은 척하고, 덕분에 가해자인 민우의 보살핌을 받기 시작한다. 같은 학교를 다녔지만 지호를 기억조차 못하는 민우와 달리 지호는 민우의 마음을 사기 위해 온갖 여성스러운 연기를 펼친다. 지호의 거짓말은 오랜 동네친구 동식(조한선)과 마주치는 바람에 탄로날 위기를 맞는데, 지호에게 다른 방법이 없다. 뻔뻔하게 기억상실 연기를 계속할 수밖에.

‘달콤한 거짓말’은 일종의 연애성장물이다. 첫사랑, 더구나 좋아한다는 고백 한번 제대로 못해본 짝사랑에 대한 아쉬움은 지호가 성장을 위해 넘어서야 하는 과제로 제시된다. 하지만 관객도 쉽게 예측할 수 있듯이 지호가 찾아야 할 정답이 반드시 첫사랑인 것은 아니다. 영화의 결말은, 가장 소중한 것은 가장 가까이에 있다는 낯익은 깨달음을 향해 달려간다.

다시 말해 전적으로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되 오밀조밀하게 사건과 캐릭터를 전개하는 솜씨가 제법 볼 만하다. 특히 박진희의 넉살 좋은 코미디 연기는 기분 좋은 웃음을 안겨주는 주연으로서 나무랄 데 없이 제 몫을 한다. 동식과 민우를 각각 거친 듯 하지만 순정을 품은 남자와, 만점짜리 매력남 같지만 실은 까칠한 내면을 지닌 남자로 살을 붙인 솜씨도 그런대로 괜찮다.

코미디의 주요 장치인 지호의 거짓말을 지나치게 억지스럽게 밀어붙이지 않는 점도 영화 전체의 유쾌함을 뒷받침한다. 데이트 커플용 연말 영화로는 이모저모 무리 없는 만듦새다. 영화가 그려내는 첫사랑의 에피소드 역시 요즘 젊은 세대의 감성에 바탕한 웃음을 안겨준다. 연애전선에서 은퇴한 지 오래된 중년 관객에게까지 첫사랑의 아릿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수준은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신인 정정화 감독의 데뷔작이다. 드라마 ‘커피프린스1호점’ 으로 얼굴을 널리 알린 김동욱이 지호의 동생 역할로 감초 연기를 펼친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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