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정부의主役들>1.올브라이트 국무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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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집권 2기를 이끌 행정부의 주요인사들의 윤곽이 드러났다.미국은 탈냉전시대에도 여전히 세계를 리드하는 슈퍼파워일 뿐 아니라 한.미 양국의 특수관계에 비춰서도 그 주역들의 행보는 주목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클린턴 집권 2기의 주역들로 지명된 면면을 깊숙이 살펴본다.
[편집자註] 전체주의 탄압을 피해 11세때 미국땅을 밟았던 한 소녀가 미국 국무장관에 지명됐다.4년전 유엔대사로 임명된 후 정례각료회의에 참석하게 된 첫번째 대사에서,국가안보회의(NSC)에도 정식멤버로 참석한 첫번째 유엔대사에 이어 여성으로서가장 높은 정부 직위에 오른 것이다.
매들린 올브라이트(59)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집요하고 저돌적이며 비외교적이라는 평가로부터 정열적이고 논리정연한 행동가라고 불리기도 한다.그러나 국무장관이 된 가장 큰 이유는 클린턴 대통령의 말마따나.미국 외교정책을 한마디로 간 결하게 잘 대변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아이티 침공사태때 다른 안보팀의 회의적 자세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전권을 위임받아 안보리 동의를 관철시켰다.지난 봄 쿠바정부가 쿠바 망명객들이 조종하는 미국 민간항공기를 격추시키자 당시 유엔안보리 회의석상에서 쿠바의 행동을 .비겁자'로몰아붙였다 .
올브라이트의 면모는 외교관이라기 보다 오히려 정치인에 가깝다.유엔안에서도 회원국 대사들과 어울리기 보다 TV출연을 즐겼다.민주당 정치헌금 모임에서는 인기 영화배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대번에 가까운 친구로 만드는 사교력도 있다.지 난 선거전에서는 공화당의 클린턴 외교정책 흠집내기에 방패막이를 자임했다.
과거 유엔대사와 달리 전세계를 누비며 클린턴 외교의 전도사 역할도 충실히 해냈다.국제사회는 올브라이트의 정책비전과 과거 행적에 비추어 그녀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 라는 점을 잘 안다.직설적이고 감정적인 어투로 전임장관과는 사뭇 다르리라 전망되기 때문이다.물론 사람이 바뀐다고 미국의 정책이 크게 변하는 것은아니다.그러나 올브라이트는 몇가지 점에서 기존의 인물들과 다른성향을 보여왔다.
나치 히틀러에 대한 서방세계의 굴복인 뮌헨협정의 피해를 체험한 그는“군사력이란 미국의 국익이 직접 위협당할 때만 동원해야한다”는 콜린 파월 전합참의장이나 군사력 개입에 소극적이었던 페리국방장관등 역대 안보정책 참모들의 입장과 다 르다.미국의 군사력 개입이 더 나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면 서슴지 않고 군사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세르비아에 대한 공습과 보스니아 파병을 주장해 데이턴평화협정의 기초도 마련했다.중국에 대해서는 개입정책을 지지하고 서방세계의삐 문제아 쿠바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를 주장해 왔다.러시아의 공산주의 회귀 가능성을 철저히 차단하고 동유럽국가들의 민주화를 적극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중동평화 정착에도 적극적이고 국제기구내 미국의 압도적인지도력 행사를 강조한다.
유엔 지휘아래에 미군을 떠맡기는 데도 반대한다.그러나 뚜렷한이념적 편향을 보인다기 보다 지극히 현실적인 행동파 외교를 선호하는 인물이다.다만 성향이 다른 신외교안보팀과의 정책조율은 그다지 원만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올브라이트의 인생역정은 결코 단순치 않다.올브라이트는 48년체코슬로바키아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정치망명했다.
이후 그녀는 남성들과 어깨를 견주며 당당히 경쟁하는 투지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미동부지역 명문 웰슬리대y 힐러리 클린턴의 모교)를 장학금으로 다녔으며 59년 우수생으로 졸업한지 사흘만에 조지프 올브라이트와 결혼했다.
신문재벌 상속자인 남편과는 82년 이혼했다.이혼의 조건으로 워싱턴 고급주택가 조지타운의 타운하우스와 3백70에이커에 이르는 버지니아주 농장과 주식등을 받아 여유있는 생활을 보장받았다.그러나 올브라이트는 결혼생활 기간중 세딸을 키우 면서도 컬럼비아대학 박사과정을 마칠만큼 억척같다.
클린턴과의 인연은 88년부터.듀카키스의 대선후보 TV토론 지원차 보스턴에 온 당시 아칸소 주지사와 조우했고 이후 줄곧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왔다.
올브라이트를 아는 이들은 그녀의 외교정책 비전보다 정치감각을한결같이 높이 산다.조지타운 저택을 민주당계 인사들의 사교장소로 제공하며 인간관계를 넓혀온 올브라이트는 스스로가 인정하듯“재능은 없지만 열심히 노력함으로써”오늘의 자리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워싱턴=길정우 특파원] ◇약력 ▶37년: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에서 출생.
▶48년:외교관인 부친을 따라 공산화된 체코를 떠나 미국으로이주,미국에 귀화.
▶59년:웰슬리대 졸업,76년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박사.
▶84년:민주당 부통령후보였던 제럴딘 페라로의 안보보좌관을 거쳐 4년뒤 마이클 듀카키스 민주당대통령후보 정책보좌관으로 일하며 정치감각 습득.
▶93년:유엔주재 미국대사에 임명.
◇신상 ▶가족:59년 신문발행인 조지프 올브라이트와 결혼했다82년 이혼.슬하에 3녀.
▶성향: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력파이자 신념을 거리낌없이 밝히는 소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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