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서울마라톤] “가난 탓에 접은 마라토너 꿈 중앙마라톤이 되찾아줬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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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99년 시작된 중앙서울마라톤에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참가한 산 증인이 있다. 페이스메이커를 담당한 주성영(49·사진)씨가 주인공이다. 그는 중앙서울마라톤 첫 해인 99년부터 올해까지 10차례나 참가해 코스를 누볐다.

주씨가 10년 동안 빠짐없이 대회에 참가한 건 마라토너의 꿈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까지만 해도 마라톤 선수를 꿈꾸던 그는 가난한 집안 사정 탓에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주씨는 “집이 가난해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았다. 끼니를 다 채우기도 힘들 만큼 어려웠다. 마라톤을 마치면 영양보충이 절실한데 그렇지 못했다”며 “어쩔 수 없이 마라토너의 꿈을 포기했고 회사원(서울신용보증재단)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주씨는 30대 후반이던 97년 다시 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리고 99년 중앙서울마라톤과 인연을 맺으며 꿈을 이어가게 됐다. 참가자들의 기록 달성을 돕는 페이스메이커를 자청한 것이다. 첫해 하프마라톤에 참가했던 주씨는 이듬해부터 페이스메이커를 담당했다. 참가자들이 오버페이스하지 않도록 함께 달리며 속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맡았다. 레이스 초반에는 수백 명의 참가자가 그의 뒤를 쫓는다.

한때 선수를 꿈꿨던 만큼 지금도 몸관리가 철저하다. 최근 열린 마라톤대회 풀코스에서도 3시간30분대를 기록하며 녹록지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4시간20분대를 목표로 하는 참가자들과 함께 레이스를 펼쳤다. 10년째를 맞이한 그는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라며 겸손해했다. 그는 또 “함께 뛴 참가자들이 대회 후 고맙다는 전화를 걸어올 때가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첫 대회 때는 참가자가 2000여 명이 되지 않았지만 10년 만에 2만 명이 넘는 참가자들로 북적거리는 모습을 보니 감개무량하군요. 중앙서울마라톤은 10년 만에 시민 친화적, 환경 친화적인 축제의 장으로 거듭났어요.”

그는 “완주만을 목표로 뛰던 초기와 달리 요즘은 가족·연인·친구들끼리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며 “요즘엔 참가자들이 준비물도 꼼꼼히 잘 챙긴다”며 흡족해했다.

80대까지 계속 뛰고 싶다는 주씨는 “환경보호를 위해 비닐옷을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과 교통 통제를 최소화하려는 주최 측의 노력이 돋보였다”며 내년에도 중앙서울마라톤에 출전할 뜻을 내비쳤다.

오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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