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이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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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호 26면

증시가 오랜만에 화색을 되찾았다. 미국 다우와 나스닥 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지난주 10% 이상의 상승세를 보였고,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도 급등세로 한 주를 마감했다. 특히 미국과 한국 간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이 큰 역할을 했다. 외환위기에 대한 공포가 가시면서 국가부도위험을 나타내는 CDS 프리미엄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증시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게 됐다.

증시엔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안도랠리를 이어가리란 전망이 많아졌다. ‘미국보다 더 떨어졌으니 반등 땐 더 오를 것’이란 기대도 일고 있다. 실제 미국 다우와 나스닥 지수가 10월에 각각 14%와 18% 빠진 데 비해 코스피지수는 23.1% 하락했다. 연초 대비 하락률도 코스피(41.3%)가 다우(29.7%)와 나스닥(35.1%)보다 높다. 하지만 다른 나라, 특히 아시아로 눈을 돌려보면 미국과의 단순 비교는 의미가 없어진다. 일본 닛케이 지수는 10월에만 23.8%, 연초 이후론 44% 떨어졌다. 상하이와 항셍지수는 월간으론 각각 24.6%와 22.5%, 연초 이후론 각각 67.1%와 49.8% 하락했다. 한국처럼 외환위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자국 통화의 지나친 강세가 문제인 나라들인데도 하락폭이 한국과 비슷하거나 컸다.

국내 주가가 싸졌다는 것도 다른 곳과 견줘보면 별 의미가 없다. 국내 주가가 순자산 가치에도 못 미친다고 하지만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일본이나 캐나다의 주가순자산비율(PBR)도 한국 증시와 비슷한 수준을 맴돌고 있다. 대표적 지표인 주가수익비율(PER)이 외환위기 수준인 8까지 떨어졌지만 선진국과 견준 상대 비율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절대가격은 낮아졌지만 상대가격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코스피지수가 유독 떨어질 일도 없지만 ‘나홀로 상승’할 이유도 딱히 없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선 역시 실물 침체의 강도와 기간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현재로선 예상보다 길고 지루한 시간을 각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기업의 3분기 실적을 보면, 소비재는 물론 그나마 버텨오던 자본재 기업까지 줄줄이 뒷걸음질치고 있다. 장사가 잘 된 곳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1달러짜리 햄버거를 많이 판 맥도널드, 일부 인터넷 기업 및 제약회사, 마카오에서 영업하는 카지노업체 등 불황형 기업들이다.

한국도 유동성 위기에 시달리는 회사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도 금융시장을 떠도는 돈은 아직 많다. 지난 주말 미국 증시는 최악의 지표들이 줄줄이 발표된 가운데서도 반등을 계속했다.

유동성과 실물 침체의 맞대결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국내 증시도 글로벌 증시와 보조를 맞추며 불안한 행보를 이어나갈 것이다. 급등락이 반복되는 이른바 ‘톱날(choppy) 장세’다. 이런 장에 섣불리 뛰어들다간 톱날에 썰릴 위험이 크다. 일방적인 전투에선 오히려 사상자가 적다. 희생자가 많은 것은 일진일퇴가 벌어지는 치열한 접전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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