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사건.4者회담 연계 왜 풀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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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24일 만난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에게북한의 잠수함 침투사건에 4자회담.경수로 지원문제가 묶인게 아니라는 입장을 취했다.金대통령은 북한이 보복을 외치는 마당에“경수로 지원을 위해 우리 기술자를 북한에 보내는 것은 불가능한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북한의 협박때문에 잠수함사건이 4자회담.경수로사업과 현실적으로 연계된 것이지 우리가 내놓은 조건이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金대통령은 그동안 잠수함사건에 대한 북한의 시인.사과.재발방지 약속이 있어야4자회담.대북(對北)경협이 재개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金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드러낸 입장은 이 제까지의 대북압박자세와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이다.
실제 정상회담을 계기로 정부측은 4자회담과 경수로 사업을 잠수함 사건과 분리.접근하는 양상을 보인다.정부 당국자는“4자회담은 원래 조건이 없으며 북한의 사과없이도 열릴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대북경협은 남북당사자문제로 선(先)사과.재발방지책 제시라는 기존 원칙을 고수하겠지만 4자회담과 경수로 문제는 유연한 해법(解法)으로 대처하겠다는 것이다.입장 변화 내지 후퇴를.유연'으로 가장하고 있다.
정상회담결과를 담은 3개항의 공동언론 발표문에도 4자회담.제네바 합의문제를 처음 두개 항목에서 언급,잠수함사건과 구분하려는 의도를 짙게 풍기고 있다.공동발표문에는 북한의 사과라는 구체적인 표현이 없다.
정부의 잠수함사건 해법이 급변한 배경에는 미국의 집요한 설득.압력과 현실판단이 작용한 듯하다.
미국측은 지난달 뉴욕회담등 막후접촉결과 북한이 비록 조건을 달긴 했지만 4자회담에 유연성을 보였음을 들어 우리측을 설득해왔다.제네바 합의를 외교업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클린턴대통령은 지난 20일 호주를 방문했을때“4자회담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며 우리의 변화를 우회적으로 요구했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장기적인 대북압박정책에 한계가 있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미국이 흔들리고 북한이 직접적 사과를 완강히 거부하는 상황에서 압박정책을 계속 밀고가는데 따른 외교적 손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우리의강경 입장이 장기화되면 국제적 여론에도 불리하다는 점이 신경쓰였다. 따라서 북한의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국제적인 명분을 챙기면서 다시 4자회담 카드를 꺼내는게 실질적 효과가 있다는 판단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정부당국자는“내일이라도 4자회담을 위한 공동 설명회가 열릴 수 있으며 잠 수함사건의 사과 문제를 우선 거론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정상회담을 계기로 잠수함사건을 둘러싼 한.미간의 미묘한 시각차이가 상당부분 해소됐다고 할 수 있다.또한 잠수함사건으로 조성된 남북긴장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정부측은 이제 다시 공이 북한에 넘어갔다고 강조했다.그러나 남북경색상황에 일단 돌파구를 마련했다고는 할 수 있지만 일관성을 잃은 대북정책과 우리 국민의 감정을 추스르는 문제도 간단하지 않다.또 북한이 4자회담에 얼마만큼 적극적으로 나올지도 속단하기 어렵다.
[마닐라=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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