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資法 있으나 마나-후원금 한도넘으면 "빌린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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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해 12월초 토요일 오후 부산시 한 고교 체육관.모(某)당의 지구당 개편대회장.방과후를 이용해 열린 개편대회에 중형 승용차 5백여대가 몰려 2천여평의 운동장이 가득 찼다.
이날 답지한 화환은 대략 2백여개.그나마 『지역 유지들의 화환은 대부분 되돌려보냈다』고 주최측은 밝혔다.
화환을 보내온 사람들의 이름은 굵직굵직 했다.정치인들의 「우정 출연」외에 시중 은행장및 지방 금융기관장등 금융계 대표 7명,50대 그룹안에 드는 기업체 대표 35명,각종 이익단체 대표 20여명등의 이름이 「휘날렸다」.
화환만 온게 아니다.위원장의 한 측근은 행사를 전후한 모금액수에 대해 『선거 두번은 넉넉히 치를 돈』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행사장 한 구석에서는 『위원장을 직접 만나 전달하겠다』는 대리인들에게 주최측이 면박을 주는 장면도 목격됐다 .
그러나 선관위에 신고된 「정치자금」은 의 액수는 확인되지 않았다.이 위원장은 올 2월 호텔에서 대대적인 후원회 행사를 다시 열었으나 선관위에 법정신고한 모금액은 총2억원대에 불과했다. 대부분 정치인에게 정치자금법은 있으나마나한 법이다.65년 정치자금법이 제정된 이후 사법부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현역 의원은 한명도 없다.
정치인에 의해 정치자금법이 만들어졌지만 「법 위에 사람이 있다」는게 정설이다.각종 대형 의혹 사건은 대부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뇌물 수수죄등 다른 법률에 의해 사법 처리됐다.
91년 정국을 뒤흔든 수서(水西)택지분양 비리사건.한보그룹이수서택지 특별분양을 위해 거액의 뇌물을 청와대.정부.국회에 뿌린 뇌물스캔들이다.
결과적으로 법의 심판을 받은 사람은 정태수(鄭泰守)회장과 장병조(張炳朝)청와대비서관등과 여야 5명의 국회의원이었다.대법원은 김태식(金台植)의원을 제외한 모두에게 『뇌물을 주고받은 혐의』를 적용해 실형을 선고했다.의원 4명의 추징. 몰수금액은 7억4천만원.
이처럼 뇌물성 거액 정치자금은 발각될 때만 법의 처분을 받는다.드러나지 않을 경우에는 법정 정치자금도 아니고 뇌물도 아니다.그저 개인간의 「정(情)」이다.
후원회 행사등을 통해 거둔 「작은 돈」이라고 모두 합법의 영역안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선관위에 신고할 때까지는 음지에 머물러 있다.신고하지 않을 경우 뇌물처럼 햇빛 구경을 하기 힘들다. 『돈이 안 들어와서 문제지 들어온 돈을 처 리하는 데는문제가 없다(재선 P의원).』 의원회관 주변에선 연간 모금한도인 3억원 이상은 신고하지 않는게 관례로 알려지고 있다.설령 3억원을 넘지 않아도 주위를 의식해 일부만 신고하는 경우도 상당하다고 한다.
의원들은 『익명을 요구한 후원자에 대한 배려』라고 설명한다.
이런 돈일수록 현금이 오간다.
이처럼 정치자금법의 그물(網)이 허술하다 보니 검은 돈이 드러난 의원의 변명도 제각각이다.94년 1억원이 넘는 돈을 기업인으로부터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야당 중진 A의원.『뇌물도,정치자금도 아닌 빌린 돈』이라고 항변하자 검찰도 힘을 잃었다. 안경사협회의 정치자금 후원은 최근 부각되는 새로운 유형이다.받은 사람은 인정하지 않지만 준 사람은 「사후 이익을 기대한」 성격의 후원인게 거의 틀림없다.
1인당 법정 후원금액인 개인 1천만원,법인 3천만원의 한도 내에서 돈을 건네는게 특징이다.돈받은 정치인들도 대부분 선관위신고절차를 마친다.
그러나 법 테두리 안의 지원이지만 준사람과 받은 사람간 시각차는 뚜렷하다.
이런 유형의 후원은 업권(業權)다툼,행정규제가 원인이라는게 정설이다.행정규제나 업권 다툼이 치열한 업계로는 약사-한의사 대립 외에도 자동차 부품.정비,건강식품,의약업계,건설.주택.토목.감리업계,유아교육및 학원업계등이 꼽힌다.

<김 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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