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으로가는간이역>2.신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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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그리고 따블백 하나와 군번 하나로 미지의 임지를 향해 北上한다.한탄강,北緯 38度線,야산,트럭 뒤 먼지가 그리는 작전도로,(중략)쎄멘 공구리 등에 지고 군자산 방카 공사,식기 닦고빨래하고…살다.그냥 비인칭 주어로 살다.』 -황지우 시 『활엽수림에서』중에서 우리는 섬에 산다.섬이라도 북쪽 바다로는 나갈수 없는 불구의 섬이다.「불구의 섬」에 살면서도 우리는 그 사실을 잊고 산다.
신탄리역.서울역에서 88.9㎞,우리가 사는 섬의 「최북단역」이다. 아이가 커다란 눈망울로 묻는다.
『저 기차를 타고 계속 가면 어디에 닿아요?』 그 아이의 손을 잡고,이땅 어디에 살든지 아이의 아빠는 대답해도 된다.섬의끝에 닿는다고,그리고 그곳엔 신탄리역이 있다고.
북위 38도13.의정부에서 기차로 1시간20분.경기도연천군신서면 신탄리역은 갈 수 없는 북쪽 바다를 비추는 등대같은 역이다. 그래서 그 신탄리역을 찾아가는 것은 우리 모두가 섬사람임을 확인하는 여정이다.
누군가 기어이 이 섬의 끝을 확인해야겠다고,직접 눈으로 봐야겠다고 우긴다면 내버려둬도 된다.
신탄리역에서 9.5㎞.
그가 보게 될 것은 고요한 가을바다가 아니라 철조망이 쳐진 휴전선이다.땅끝 대신 철조망 앞에 선 그가 무슨 말을 할지는 누구도 모른다.
사람은 추억으로 산다.켜켜이 쌓인 기억의 힘이 우리를 앞으로밀어낸다.
『1년간 철책 근무를 했습니다.정확히 스물 세살의 생일 전날철책 초소에 들어가 스물 네살의 생일을 보내고 나왔어요.제대할땐 안울었지만 철책 초소에서 나오던 날은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못먹는 술을 마시고 막사 뒤켠에서 혼자 많이 도 울었지요.』한규경(29.서울도봉구미아동)씨.남도 어느 소도시에서 태어났다.대학을 휴학하고 논산훈련소를 거쳐 91년부터 93년까지 이곳연천의 모부대에서 근무했다.
신탄리로 가는 가을 기차안에서 만난 한씨.
제대하고 3년만에 처음 신탄리를 찾는다고 했다.
올 봄 대학을 뒤늦게 마친 그는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를고민하고 있다고,왠지 이곳에 한번 꼭 와봐야 할 것 같았다고 말한다. 해질 무렵 가을 오후의 신탄리역은 쓸쓸하다.몇몇은 기차에 오르고 몇몇은 내린다.승강장 양 옆으로 길게 엇갈린 철길이 석양의 가을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기관차는 승강장 주위의 철길을 천천히 한바퀴 돌아 왔던 길을무심히 되짚어 간다.
승강장에 세워진 이정표.
이곳이 신탄리역임을 알려주는 입간판에 정작 다음역을 알리는 칸은 비어있다.휑한 화살표는 북쪽을 가리키고 있지만 역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는 하얀 빈칸일 뿐이다.
『노인분들이 많이 오십니다.하루에 20~30분정도 되나요.자주 오셔서 이제 낯익은 분들도 계시죠.대부분 고향이 이북인 분들입니다.간혹 철도종단점 표지 앞에서 우시는 분들도 드물지 않게 봅니다.이제 늙으신 분들이 어딜 가시겠어요.여 기라도 오셔서 하루를 보내시는 겁니다.』 역장 김경섭(48)씨가 전하는 신탄리역의 정경은 슬픔을 넘어 어떤 알지못할 분노를 전한다.철도 종단점 표지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이제 진부하게마저 들리는 비원(悲願)이 새겨져 있다.
〈연천=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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