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안정성장이 대세 갈라-美대통령선거 결과 뭘 의미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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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현상 유지의 선거」.
96년 미국 선거 결과를 한마디로 나타낼 수 있는 말이다.
대통령이 바뀌지 않았고 공화당이 다수인 의회도 그대로다.
예상됐던대로의 이같은 선거 결과를 접한 유권자나 전문가들의 반응도 그저 덤덤하다.
AP통신의 출구조사에 응한 투표자 절반 이상은 「클린턴이 재임동안 어떻게 할지에 대해 관심도 걱정도 없는」사람들이었다.『양쪽 다 마음에 들지 않아 덜 나쁜 쪽을 찍었다』는 유권자들은곳곳에서 주요 언론에 인용되고 있다.
정치적 축제의 장이 한둘쯤은 만들게 마련인 「영웅」도 나오지않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후 처음으로 재선된 민주당 대통령이라는 기록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은 벌써부터 주요 언론으로부터 『(재선은 됐지만)역사에 남을만한 대통령은 못 될지 모른다』는평을 받고 있다.
보스니아나 의료보장의 먼 장래등 진짜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클린턴은 이번 선거 내내 제대로 시험을 치러보지도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공화당이 의회를 잃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유권자들이 공화당을마음에 들어해서라기보다 「클린턴 행정부를 견제토록하기 위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승패의 원인에 대한 분석도 결과에 대한 이같은 분석들만큼이나거의 일치하고 있다.
안정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미국 경제가 클린턴 승리의 가장 든든한 바탕이 됐다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건실한 경제를 바탕으로 클린턴은 92년과 94년 선거때 강하게 나타났던 「현 상태에 대한 불만」성향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전략을 구사했고,그 전략은 적중했다.
94년 선거에서 의회를 공화당에 빼앗긴 클린턴은 이후 유권자들의 불만이 행정부가 아닌 의회내 급진세력으로 향하게끔 돌려놓는 전략을 쓰기 시작했다.
원래 공화당 주장이던 균형예산안을 받아들여 주도권을 쥔 뒤 도리어 공화당의 과격한 예산 삭감을 공격,자신은 민주.공화 양당 사이의 「중도 노선」이라는 인식을 유권자들에게 강하게 심어주는 식이었다.
공화당의 의회 장악이 클린턴에게는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된 셈인데,이를 두고 클린턴이 의회를 방패로 이용하며 자신의 무능을감춰왔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나이도 많은 도울이 대폭 감세등 클린턴에 비해 더 과격한 주장을 펴며 스스로 악수(惡手)를 둔 것이야말로 클린턴에게는 결정적 원군이 됐던 셈이다.
이처럼 이번 미국 선거의 「현상 유지」 결과는 예컨대 「냉전이후의 보수.진보 수렴」등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문제들은 선거 기간 내내 제대로 다뤄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워싱턴=김수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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