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어긋난 두 브리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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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윤 경제부 기자

"일단 입법 예고한 뒤 재정경제부와 지속적으로 협의하겠다."(공정거래위원회)

"아직 공정위와 합의가 안 됐다. 입법 예고 기간에 우리 안을 관철시키겠다."(재정경제부)

지난 6일 오전 정부 과천청사 브리핑 룸에선 같은 사안을 두고 두 부처가 잇따라 엇갈린 발표를 내놨다.

공정위가 먼저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유지하고 금융계열사의 의결권을 축소하는 등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그러자 곧바로 재경부가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개정안으로 응수했다. 대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대기업이 지배주주가 아닌 사모주식투자펀드에 대해선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지주회사제를 적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기업의 투자와 관련해 한쪽은 조이고 다른 한쪽은 풀겠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헷갈릴 뿐이다.

정부의 각 부처가 반드시 똑같은 목소리를 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날은 사정이 달랐다. 두 부처는 서로 상충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사전에 합의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다른 부처야 무슨 소리를 하든 상관없이 내 주장만 편 것이다.

재경부 고위 관계자는 "17대 국회가 6월에 열리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 일단 서둘러 발표하고 앞으로 합의를 보겠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시장 개혁 로드맵에 나와 있는 내용을 그대로 발표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재경부와 공정위는 이미 지난해 4월부터 학계 전문가와 함께 '산업 자본의 금융 지배 방지를 위한 특별팀'을 꾸려 비슷한 내용을 논의해 왔다. 올 1월에는 이와 관련된 일정표도 나왔다. 사모주식투자펀드 활성화 방안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논의해온 것이다.

시간이 없거나 협의를 안 한 게 아니라 논리적으로 설득하거나 양보할 생각이 없이 그냥 각자의 주장을 발표해 버린 것이다. 책임 있는 정부의 면모는 보이지 않고 이기적인 부처의 아집만 남았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소가 최근 평가한 우리나라 정부의 '정책 일관성'순위는 전체 조사 대상 60개국 가운데 54위였다.

김종윤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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