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칼럼>남성위주 직장문화 바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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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기업들의 가을 신입사원 모집광고가 하나 둘 나붙기 시작했다.취업철과 관련해 근년의 변화중 하나라면 대졸여성들을 채용하는기업들이 늘었다는 것이다.공채광고에 더 이상 「남자에 한함」이란 말은 없으며 『실력있으면 남녀불문하고 뽑겠다 』는게 기업 인사담당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실제로 50대 그룹의 대졸여사원채용비율은 90년까지 전체 공채규모대비 4%선에서 93년 9.
7%,지난해 11.3%로 개선돼왔다.
그러나 요즘 취업하려는,대학나온 딸을 둔 부모들이라면 여기에이의를 제기할지 모른다.현실적으로 대졸여성들이 취업하기란 여전히 하늘의 별따기인 때문이다.대학졸업후 취직이 안돼 대학원을 다니고,영어를 잘하면 될까 싶어 해외연수도 다녀 오고….그러고도 뽑아주는데가 없어 무위도식(?)하는 여성들을 주변에서 본다.사회적으로 이 얼마나 낭비인가.
기업들이 여성채용을 기피하는 이유는 몇가지다.취업정보 『리크루트』지가 6백대기업 인사담당자들에게 물은 바에 따르면 「직업의식의 결여」「결혼후 퇴사문제」「추진력부족」「체력의 한계」등을꼽고 있다.그러나 기본적인 문제는 철저히 남성위 주인 직장의 업무관행과 제도.분위기에 있지 않나 싶다.여성과 동등하게 일해본 적이 거의 없는 남성상사나 직원들로서는 여성과 일하는게 왠지 불편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자기들만의 문화」를 고집,벽을쌓다보니 여성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직장에서 밀려나게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돼 왔다면 지나친 단순화일까.
뽑는 것 못지 않게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여성인력의 활용을 위해 중요한 까닭은 그래서다.대졸 여성인력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지난 몇년간 한해 수백명씩 뽑아왔던일부 그룹들이 그 성과에 회의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듣는다.
장기적일 수밖에 없는 인력투자의 효과를 단 2,3년에 거두려 드는 경영진의 성급함도 문제지만 그들 신입 여사원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게 기업 내부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궁금하다.임원비서로 배치돼 그저 책읽고 자리지키는 일만 하다 뭐하나싶어 사표를 냈다는 전직 대졸여사원도 있다.업무배치나 경력관리등에서 여성들이 직장에 뿌리내릴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은 등한시한채 그저 뽑기만한데서 빚어진 시행착오라고 본다.
성별.인종에 제한없이 누구나 능력껏 일할 수 있게 기회의 장을 넓혀가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인권차원 때문만은 아니다.남녀불문하고 가장 유능한 인력으로 무장된 외국기업들과 경쟁하려면 우리도 무장하지 않으면 안된다.남성위주의 제도. 직장문화를 바꾸는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박신옥 생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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